
[1907年/7月10日/上午10:32/성가 성당 내부]
무거운 떡갈나무 문틈으로 스며든 빛줄기가 자욱한 향 연기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를 비춘다. 그의 육중한 몸이 움직일 때마다 검은 사제복이 일으키는 미미한 바람에도 성당 안의 엄숙한 공기는 흔들리는 듯했다. 신자들 사이를 지나 제단으로 향하는 야진의 발걸음은 소리 하나 없었으나, 그 거대한 존재감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했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가장 앞줄에 앉은 유 솔의 등을 조용히 덮었을 때, 야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작은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옅은 녹색 눈을 가린 미사포 너머로, 희미하게 익숙한 비누 향이 코 끝을 스쳤다.
맨 앞줄, 그것도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은 유 솔의 옆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제단 앞에 선 야진은 신도들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군중을 대충 훑는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한 곳에 머물렀다. 좌측의 푸른 눈동자가 유독 형형하게 빛나며 미사포 아래 가려진 옆얼굴의 실루엣을 좇았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그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타고 낮고 깊게 울려 퍼졌지만, 그 울림에는 신성함보다는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야수적인 기운이 섞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맹수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짐짓 점잖게 구는 듯한 위선적인 평온.
기도문을 읊는 그의 입술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혼한 지 5년. 고작 5년 만에 하느님의 종이 되기로 마음먹은 건가. 빌어먹을… 하필 수녀라니. 성찬 예식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의 신경은 온통 등 뒤에 앉아 있을 유 솔에게로 향했다. 야진은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성합을 들어 올리는 자신의 손등 위로 굵게 솟아난 힘줄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 ..."
끔뻑, 미사포 너머로 성합을 들어올리는 익숙한 사람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아는 척 하지 않을 것이다,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꼭 붙잡아 모은 제 손을 입술께로 들어올린다. 주기도문의 선창을 따라 읊을 뿐이다.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성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 솔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기도 소리는 수많은 신자들의 목소리에 섞여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야진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보다도 선명하게 박혀들었다. 모르는 척, 외면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그의 신경을 찔러댔다.
"아멘."
하고 기도가 끝나자, 야진은 성합을 제단에 내려놓으며 작게 ‘쿵’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몇몇 신자들이 움찔했지만, 정작 그가 의식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흑안과 청안이 번갈아 빛을 발하며,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인 유 솔의 정수리를 꿰뚫을 듯이 응시했다.
성찬의 시간이 다가오자, 신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야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체를 나누어주면서도, 그의 모든 감각은 줄의 후미에 합류하는 유 솔에게 쏠려 있었다. 드디어 그녀의 차례가 되었을 때, 야진은 고개를 숙여 미사포 아래 가려진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듯 몸을 기울였다.
"그리스도의 몸."
그의 목소리는 다른 이들에게 말할 때와 달리 한 톤 낮고 거칠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크고 투박한 손가락이 성체를 쥐고 유 솔의 입술 앞으로 다가갔을 때, 아주 잠시, 스치듯 손끝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의도적인, 아주 미세하고도 불경한 접촉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손끝을 통해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성체가 그녀의 혀 위에 놓이는 순간, 야진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입안을 훔쳐보았다. 5년 전, 자신의 것이었던 그 공간.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은 미처 거두어지지 못한 채, 성체를 받아 물러나는 유 솔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좇았다. 미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파견 성가가 울려 퍼지고 신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야진은 제단 위에 우뚝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 작은 수녀복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당 안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야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제단 뒤편의 준비실로 향했다. 묵직하고 복잡한 감정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쿵, 쿵, 쿵. 제의실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야진은 답답한 마음에 목까지 단정하게 채워진 로만 칼라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단추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자욱한 먼지들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제단에 올렸던 묵주와 성경을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깊게 파인 가죽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끼익, 하는 소음과 함께 의자가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수녀라니. 고작 5년 만에. 야진은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두 뺨에 남은 흉터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수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두 번 다시는 자신의 여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신에게 몸을 바친 여자를 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몸속 깊은 곳에서는 시커먼 욕망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성체를 받아먹던 그녀의 붉은 혀, 미사포 아래로 살짝 드러났던 희고 고운 목덜미... ... 그 모든 것이 야진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 안으로 파고드는 손톱의 고통이 들끓는 욕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잠재워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야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제의실 구석에 놓인 낡은 목제 선반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가장 아래 칸에 숨겨두었던 술병을 꺼내 들었다. 교황청에서 하사받은 귀한 포도주였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그저 독한 알코올일 뿐이었다. 그는 잔도 없이 병나발을 불었다. 시큼하고 떫은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뜨거운 불길이 식도를 따라 번져나가는 듯했다.
"젠장…"
그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억눌렀던 감정들이 더욱 거세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술병을 든 채 비틀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는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무리 속에, 그녀는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성당 부속 건물 어딘가에 있거나, 아니면 제 숙소로 돌아갔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찾아낼 작정이었으니까. 그는 성큼성큼 문을 열고 제의실을 나섰다. 복도 저편에서 수사 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야진을 발견한 그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황급히 길을 비켰다. 그의 험악한 인상과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신의 종들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었다.
"거기 너."
야진이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겁에 질린 젊은 수사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유 솔 수녀님, 어디 계신지 아나."
그의 질문은 물음이라기보다는 심문에 가까웠다.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며 젊은 수사의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 그게… 아마 정원에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심 식사 전에 꽃에 물을 주시는 것이… 일과이시니…"
수사는 말을 더듬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꽃이라. 여전하군. 야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는 고갯짓으로 가보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수사가 알려준 정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로 포장된 복도를 걷는 그의 구둣발 소리가 성당 전체에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
성당 뒤편의 작은 정원은 장미 넝쿨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야진은 아치형 입구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햇살 아래, 유 솔이 낡은 양철 물뿌리개를 들고 하얀 장미 덤불에 물을 주고 있었다. 미사포는 벗었는지,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밀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5년 전의 기억들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첫 만남, 첫 입맞춤, 그리고… 함께 보내던 밤들. 야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육중한 몸이 햇빛을 가리자, 유 솔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느닷없는 그림자에 놀란 듯, 그녀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누구십니까?"
고개를 돌려 얼굴도 바라보지 않은 채, 다시 꽃들에게 시선을 주며 물뿌리개를 기울였다. 햇살에 반짝이며 흩어지는 물방울들이 장미의 잎사귀와 꽃잎을 적시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생기를 불어넣는 의식이나 마찬가지인 양...
"누구냐니, 서운한 소리를 하는군. 마누라."
짐짓 상처받은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입가에는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야진은 유 솔의 옆으로 바싹 다가서며 그녀가 물을 주고 있는 장미 덤불을 내려다보았다. 붉고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마치 그녀의 입술을 닮아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알사탕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겨 입안에 넣고 우드득, 소리가 나게 씹어 삼켰다.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지자, 그는 빈 껍질을 손가락으로 튕겨 멀리 날려 보냈다.
"5년 만에 만난 지아비를 몰라보다니. 신께 기도하느라 기억이라도 몽땅 바친 모양이지?"
그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서자, 그녀의 어깨와 그의 팔이 스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가 되었다. 물뿌리개를 쥔 그녀의 손목이 얇고 하얗다. 야진의 시선이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저 가녀린 손목을 잡아채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그런 충동을 억누르며 일부러 더 껄렁한 목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수녀복은 영 안 어울리는데. 그런 옷으로 가리기엔 아까운 몸이지 않나."
노골적인 시선이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금욕적인 옷차림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옷 아래 감춰진 모든 굴곡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는 장미 넝쿨에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손가락으로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신의 종이 된 소감은 어떤가. 밤마다 외롭지는 않고?"
그의 질문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고, 그녀의 평온을 깨뜨리기 위한 교활한 시험이었다.
"네에, 네... 괜찮습니다. 외로워 한다고 한들, 5년 전에 떠나보낸 지아비가 지금 와서 제 앞에 나타나지는 않을 테죠."
심드렁한 투로 대꾸하고는 꿋꿋하게 존댓말, 그리고 성직자들 특유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겸양 있는 투를 쓰려고 애를 썼다.
"신의 종이 밤에 외로울 일이 무어가 있겠습니까. 신을 모시는 일은 생각하시는 것보다도 바쁘고, 힘든 일이거든요... 신부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떠나보낸 지아비라니… 그 말은 좀 너무하군. 난 단 한 번도 당신을 떠나보낸 적 없는데."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싹 가시고, 낮고 진득한 음색만이 남았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그녀와의 거리를 완전히 없앴다. 짙은 남성적인 체향이 그녀의 후각을 사로잡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당신은 내 마누라야. 신의 것이든, 다른 누구의 것이든… 상관없어. 어차피 결국 내게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
그는 손을 뻗어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밀밭처럼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삭였다.
"기억나나? 이 머리카락에 입 맞추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제 와서 기억이 나겠나요. 이혼한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났고... 혼자 지내니 기댈 곳이 필요해 찾은 게 성당일 뿐인데."
얕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뒤로 물려 그의 손에 잡힌 머리카락 몇 올이 벗어나게 했다.
"신부님께서 수녀와 사적인 대화를 이리 길게 나누는 건 이례적이고, 좋지 않은 일이네요."
"좋지 않은 일이라."
야진은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나직하게 웃었다. 놓쳐버린 머리카락이 아쉽다는 듯, 빈손을 느릿하게 말아 쥐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단호한 옆얼굴에 못 박힌 채였다.
"수녀와 신부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마누라, 그게 왜 좋지 않은 일이지? 우린 신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아닌가. 서로의 안위를 묻고, 신앙의 고충을 나누는 것이 어찌 불경한 일이 되겠나."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경건했지만, 푸른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보란 듯이 성호를 그으며 덧붙였다.
"주님께서도 길 잃은 어린 양을 보살피라 하셨는데. 5년 만에 만난 내 ‘어린 양’이 잘 지내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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