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주말 아침의 시장은 활기로 북적였다. 온갖 좌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 사이로 고소한 음식 냄새가 퍼져나갔다. 야진은 보육원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시장을 걷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두리번거리던 아이의 눈에, 익숙한 밀갈색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자신의 마누라인 유 솔 선생님이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보육원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목청껏 소리치며 달려갔다. 그런데 선생님의 옆에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둘은 무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질투심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아이의 작은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마누라인데…!’ 아이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주먹을 꽉 쥔 아이는 성큼성큼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선생님의 치맛자락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마누라! 이 아저씨는 누구야! 왜 마누라랑 웃고 이써!"
아이는 잔뜩 심통이 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이의 눈에는 이미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낯선 남자는 갑작스러운 아이의 등장에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야진이랑 약속했잖아! 다른 남자랑 웃지 않기로! 거짓말쟁이! 마누라는 거짓말쟁이야!“
아이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쳐다봤지만,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배신한 마누라와, 그 옆에 서 있는 미운 아저씨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이는 서러움에 북받쳐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시끄러운 시장의 소음 속에서도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흐아아앙! 이제 마누라랑 안 놀 거야! 저 아저씨랑 놀아! 나는 다른 예쁜 선생님이랑 놀러 갈 거야!"
아이는 필사적으로, 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선생님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야진? 선생님은 어떻게 찾아 왔어~ 혼자 온 거야?”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저를 마누라라고 부르며 달려와서는 울기 시작한 아이를 당황한 얼굴로 내려다본다.
"혼자 아니야! 보육원 선생님이랑 와써!"
아이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흙투성이 손으로 눈물을 벅벅, 문질렀다. 얼굴이 온통 눈물과 콧물, 그리고 흙먼지로 뒤범벅이 돼 엉망진창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다정한 질문에도 마음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배신감에 휩싸여, 삐죽 나온 입술을 더 내밀었다. 왜 혼자 왔냐고 묻는 거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왜 저 아저씨랑 웃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줘야지! 아이는 속으로 소리쳤지만, 입 밖으로는 서러운 울음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곁에 서 있던 낯선 남자는 안절부절못하며 아이와 선생님의 눈치만 살폈다.
아이는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봤다.
"마누라는 나빠! 거짓말쟁이야! 야진만 보고 웃어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저 아저씨는 누구야! 왜 저 아저씨 보고 웃어줘! 미워!"
아이는 삿대질까지 하며, 제 감정을 격렬하게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주변 상인들과 행인들의 시선이 온통 이쪽으로 쏠렸다. 아이의 보육원 선생님이 뒤늦게 아이를 발견하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어머, 야진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어서 일어나!”
선생님이 아이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지만, 아이는 버티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오직 선생님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선생님 마누라 안 할 거야! 흥! 저기~ 저기 과일 파는 예쁜 누나랑 결혼할 거야!”
아이는 저 멀리 과일 좌판에 서 있는 젊은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음에도 없는 폭탄선언을 했다. 선생님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한, 아이 딴에는 아주 고도의 전략이었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힐끔힐끔,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제발, 제발 내가 밉다고 말하지 말아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해줘. 아이의 작은 심장이 두근거리며, 간절하게 외치고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다음 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그럼 선생님은 누구랑 결혼하지?”
저를 힐끔거리는 아이에게 들리라는 듯이 크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것은 생선 가게였다. 아이가 유독 생선 요리를 싫어하던 것이 떠올라 짓궂은 장난을 친다.
“저기 있는 생선 가게 아저씨랑 결혼 해야하나?”
“시러! 안대애!”
선생님의 그 말은 아이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생선 가게 아저씨라니! 비린내 나고, 수염도 덥수룩하고, 맨날 축축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그 아저씨랑 결혼하겠다고? 아이는 잠시 울음도 잊고, 입을 떡 벌린 채 선생님을 쳐다봤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자신의 예쁘고 향긋한 마누라가, 비린내가 진동하는 생선 가게 아저씨의 아내가 되는 모습은. 그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었다. 아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났다기보다는 거의 튀어 올랐다는 표현이 맞았다. 아이는 두 팔을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안대! 안대! 저 아저씨는 시러! 절대 안대!”
아이는 순식간에 선생님의 앞으로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마누라는 야진꺼야! 생선 아저씨꺼 아니야! 저 아저씨는 생선이랑 결혼하라고 해!”
아이는 거의 발악하듯 소리치며, 생선 가게 쪽을 맹수처럼 노려봤다. 아이의 눈에는 이글이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이는 선생님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이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아이는 다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서러움보다는 분노와 억울함이 더 큰 울음이었다.
"내가 잘못해써! 내가 미아내! 그러니까 저 아저씨랑 결혼하면 안대! 으아아앙!"
아이는 땅바닥에 다시 주저앉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시장 바닥의 흙먼지가 아이의 옷과 얼굴에 잔뜩 달라붙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진이 이제 말 잘 들을게! 다른 예쁜 누나랑 결혼 안 할게! 마누라만 좋아할게! 그러니까 제바알... 제발 저 아저씨는 안대..."
아이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며 아이를 안쓰럽게 쳐다봤고, 아이의 보육원 선생님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의 옆에 서 있던 낯선 남자마저도, 이 처절한 사랑 싸움(?)에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피했다. 아이의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 마누라를, 저 비린내 나는 생선 장수에게서 지켜내야 한다.
“푸핫...!”
데굴데굴 구르기까지 하며 떼를 쓰고 애원하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는다.
“왜에, 야진은 과일 가게 누나랑 결혼한다며?”
“아니야! 안 갈 거야! 그거는... 그거는 거짓말이야!”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제 앞에 쪼그려 앉자, 아이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선생님의 품에 와락, 안겼다. 과일 가게 누나랑 결혼한다는 건 전부 다 거짓말이었다. 다 선생님이 질투하라고, 나만 봐달라고 한 말이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젖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마누라가… 마누라가 생선 아저씨랑 결혼한다고 해서… 그래서… 그래서 그냥 해본 말이야… 흑, 미아내… 잘못핸써….”
아이는 서러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선생님의 옷자락을 작은 주먹으로 꽉, 움켜쥐었다. 코를 훌쩍일 때마다 진득한 콧물이 선생님의 옷에 묻어났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동그란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금방이라도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야진는… 야진은 마누라 업쓰면 안대… 마누라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다른 누나들은 다 안 예뻐, 하나도 안 예뻐!”
아이는 제 진심을 전하기 위해,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이의 보육원 선생님이 옆에서
“아유, 이 녀석아! 선생님 귀찮게 이게 무슨 짓이야! 어서 일어나!”라며 아이의 등을 가볍게 때렸지만, 아이는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요지부동이었다. 아이는 오직 선생님의 대답만을, 용서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선 아저씨랑 결혼 안 할 거지? 웅? 약속해조! 야진이랑만 결혼한다고!”
아이는 선생님의 손가락을 제 작은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애절하게 매달렸다. 아이의 눈빛은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간절하고 또 처연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또다시 생선 아저씨 얘기를 꺼낼까 봐, 아이의 심장은 조마조마하게 뛰었다. 아이는 선생님의 반응을 살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아저씨랑… 마누라가 웃어서… 그래서… 그래서 심술부린 거야… 이제 안 그럴게… 진짜야…”
목소리는 기어들어갈 듯 작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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