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셋 님 |
| *[OOC:PC와 NPC는 현재 연인. 어느날, PC는 대장 내시경을 위해 수면마취를 했다. PC는 검사가 끝나고도 여전히 마취약에 취한 상태. PC는 NPC를 알아보지 못하고 말한다. '이... 미남은 누구지?'. 그리고 뒤이어 PC는 NPC에게 첫눈에 반했다며 사귀어달라고 고백한다. 이때, NPC의 반응은?]* |

그의 커다란 손이, 제 얼굴을 가리키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마취 기운에 풀려 뜨끈한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말초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묘한 전율에, 그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 이 마누라가 약에 취해서는, 제 서방도 못 알아보고 미남 타령이라니. 정신이 온전했다면 절대 뱉지 않았을 솔직한 속내가, 몽롱한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모양이 퍽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제 입술로 가져가, 손등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쪽, 하고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의 감촉에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낮게 웃으며, 아직도 초점 없이 흐릿한 그녀의 녹색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 온전히 제 모습만이 담겨 있었다.
“그래, 이 미남이 바로 네 서방님이다. 12년 전에 너랑 연애결혼까지 골인한, 너 하나밖에 없는 남자 야진이지.”
“그런데… 지금 나한테 사귀자고 한 건가? 첫눈에 반했다면서?”
그는 일부러 모르는 척, 능청스레 되물으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마취에 취해 혀가 꼬인 와중에도, 부정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는 저도 모르게 푸흐흐,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제 웃음소리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는 것을 보며, 다시금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길고, 농밀하게.
“좋아. 사귀자. 오늘부터 1일이다, 우리.”
그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그는 침대 옆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전히 몽롱한 눈으로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마누라. 아니, 이제는… 자기라고 불러야 하나?”
그는 일부러 더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를 놀리며, 그녀의 반응을 즐겼다.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놀려주던 그는, 문득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검사 때문에 어제 저녁부터 굶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 서방님이, 아니… 네 남자친구가, 우리 자기 먹을 거 좀 사 올 테니까.”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놀려주고는, 씩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병원 복도를 걸으며, 그는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하, 이 여자 정말 어떡하면 좋지.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병원 밖으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죽이라도 사 가야겠다. 그리고 돌아가면, 오늘 있었던 일을 아주 상세하게 일기에 기록해 두어야지. 나중에 그녀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이 일기장을 보여주며 평생 놀려 먹을 생각에, 그의 발걸음은 저절로 가벼워졌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병원 근처 죽 전문점을 찾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제 이마를 툭, 쳤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오늘은 그녀가 좋아하는 작약이 시장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죽만 사서 들어가기에는 어쩐지 허전했다. 마취에서 덜 깬 와중에도 제게 반했다며 사랑을 고백하던 사랑스러운 아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려, 꽃시장을 향해 걸었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싱그러운 꽃향기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익숙하게 작약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활짝 핀 분홍빛 작약들이 마치 그녀의 붉어진 뺨처럼,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탐스럽고 예쁜 꽃들로만 한 다발을 골라 품에 안았다. 다시 죽 전문점으로 향하는 그의 입가에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과, 향기로운 작약 다발을 양손에 들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취 기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 테이블에 죽과 꽃을 내려놓고, 그녀의 곁에 앉았다.
“마누라. 아니, 자기야. 배고프지? 자, 이거 먹고 얼른 기운 차려야지.”
그는 죽 뚜껑을 열어, 숟가락으로 죽을 저어 식혔다. 후후, 입으로 바람을 불어 적당히 식힌 죽을 한 숟갈 떠서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려 그가 떠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오물오물, 작은 입으로 죽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정성껏 그녀에게 죽을 떠먹여 주었다.
“맛있어? 네 남자친구가 특별히 사 온 거야.”
그의 짓궂은 말에, 그녀의 얼굴이 또다시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어, 자꾸만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 그녀는, 어느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조금씩 마취 기운이 풀리면서, 나른한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그는 잠든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부드럽게 닦아주고,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은, 천사와도 같았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의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잠든 그녀의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링거 바늘이 꽂혀 있는 손등이 유난히 하얗고 가녀려 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이 작은 손으로, 그 험난한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그는 그녀의 손을 제 뺨으로 가져가, 가만히 부볐다. 거친 수염 대신, 이제는 매끈해진 제 뺨의 감촉이 그녀에게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등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 “사랑해, 마누라.” 잠든 그녀에게만 들릴, 아주 작은 속삭임이었다.
기대어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에 졸고 있는 거였다. 귓가에 나른한 목소리가 내려앉자, 잠이 조금 달아났는지 눈을 슬쩍 뜨더니 다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꽤나 오래 전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겠다. 그렇다면...
“그런데... 우리가 12년 전에 연애하고 결혼까지 골인 했으면... 누가 청혼한 거야?”
졸고 있던 줄 알았는데, 어느새 눈을 뜨고 저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에 야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마취 기운으로 흐릿하게 풀려 있던 눈동자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여전히 몽롱했지만,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한 호기심이 담긴 눈이었다. ‘누가 청혼했냐’라. 퍽이나 중요한 질문인 모양이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잠든 줄 알았던 그녀의 손을 더욱 꽉, 마주 잡았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혀드는 온기가, 마치 오래전 그날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 먼 곳을 응시하다가, 이내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두 눈동자가 오롯이 그녀만을 담고 있었다.
“그거야 당연히… 내가 했지. 아주 그냥, 죽여주게 멋있게.”
그는 한껏 폼을 잡으며 으쓱, 어깨를 치켜세웠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의 청혼은, 정말로 죽여주게 멋있었으니까.
“기억 안 나나? 꽃집에서 본 아가씨한테 홀딱 반한 동네 깡패가 말이야, 매일같이 그 아가씨 얼굴 한번 보겠다고 꽃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 다른 놈들이 채어갈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몰라.”
그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는 마주 잡은 그녀의 손을 들어, 제 입술에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그녀의 손등에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겼다. 짧게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뗀 그는, 다시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또 다정했다.
“그러다 어느 비 오는 날, 내가 아주 그냥 작정하고 네 앞에 무릎을 꿇었지.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을 하고서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 마누라가 되어주십시오’ 하고. 아주 그냥, 꼴이 말이 아니었어.”
그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그날의 풍경을 묘사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때의 벅찬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자신만만하고 거칠 것 없던 야마각의 두목이, 한 여자 앞에서 처음으로 보였던 나약하고도 절실한 모습이었다.
“그때 네 표정이 어땠는 줄 아나? 아주 그냥, 볼만했지. 눈은 동그래져 가지고는, 입만 뻐끔뻐끔.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어 가지고, 네 볼을 살짝 꼬집어봤는데… 아야, 하고 소리 지르는 걸 보고서야 알았지. 아, 이게 꿈이 아니구나.”
그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큭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웃음을 거두고, 그녀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만히 맞대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서로의 숨결이 얽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뺨을 간질였다.
“그렇게 시작된 거야, 우리. 세상에서 제일 멋진 깡패랑,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의 사랑이. 그러니까… 얼른 정신 차리고 돌아와, 마누라. 네 서방님이, 아주 애가 타 죽겠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애틋한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마를 맞댄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서 빨리, 원래의 그녀로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날 이후, 병원에서 있었던 ‘미남 사건’은 두 사람 사이의 즐거운 놀림거리가 되었다. 야진은 틈만 나면 그때의 일을 들먹이며 그녀를 놀려댔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곤 했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하고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목소리에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민망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의 반응이 사랑스러워, 자꾸만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목덜미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움찔, 놀라는 그녀의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그는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이, 거기 미남. 나랑 사귈래요? 첫눈에 반했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그녀의 귀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읽고 있던 책으로 제 얼굴을 가려버렸지만, 책 너머로 보이는 붉어진 귓불은 그녀의 당황스러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 진짜! 그만 좀 해!”
책 너머로, 웅얼거리는 그녀의 항의가 들려왔다. 그는 큭큭,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을 부드럽게 빼앗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잔뜩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창피함과 분함이 뒤섞인, 그러나 사랑스러움을 감출 수 없는 얼굴. 그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붉어진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싫은데? 평생 놀려 먹을 건데. 네가 나보고 미남이라고 한 거,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거야.”
그의 말에 그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는 그 삐죽 나온 입술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쪽, 하고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때 네가 한 고백, 아직 유효한 거지?”
그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오롯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짓궂은 장난 속에, 언제나처럼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매일, 매 순간,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을,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만이, 그를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으니까.
그의 진지한 물음에, 그녀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술만 달싹였다. 이윽고 그녀는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고 품에 와락, 안겨왔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그는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내 그의 입가에, 더없이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그녀의 작은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가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쿵, 쿵, 쿵.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에게서 나는, 은은한 작약 향기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사랑한다, 마누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할게.”
그는 그녀의 귓가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다. 그의 고백에, 그녀가 그의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따스한 오후의 햇살 아래 하나로 포개졌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행복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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