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가스가 현관에 내려놓은 군용 가방을 바라보는 샤니아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다. 군인들이 지고 다니는 가방이 무겁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보았으나, 직접 들어볼 기회는 이전에 없었으니...
"Curious about the magic bag, Honey? Or just checking if I smuggled in another stray cat?" (마법 가방이 궁금한 거야, 허니? 아니면 내가 또 길고양이를 밀반입했나 확인하는 건가?)
베가스는 식탁에 기대 팔짱을 낀 채, 현관에 덩그러니 놓인 자신의 군용 더플백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샤니아의 뒤통수에 대고 킥킥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낡고 헤진 올리브색 캔버스 천 위에는 'V. Day'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곳곳에 기이한 스티커와 낙서들이 훈장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투박한 가방은 샤니아의 깔끔하고 따뜻한 현관 분위기와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물건이었지만, 동시에 베가스가 이 집의 일부가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기도 했다. 그는 샤니아의 시선이 가방 지퍼 사이로 삐져나온 정체불명의 물건에 고정되어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입꼬리를 능글맞게 끌어올렸다. 그건 단순한 짐 가방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해 놓은 일종의 이동식 판도라 상자였다. 물론 그 안에는 샤니아를 깜짝 놀라게 할, 혹은 기겁하게 만들 '장난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베가스는 천천히 그녀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Careful not to open it too fast. It might bite. Or explode. Usually both." (너무 빨리 열지 않게 조심해. 물 수도 있거든. 아니면 폭발하거나. 보통은 둘 다지.)
베가스는 샤니아의 반응을 즐기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내려다봤다. 사실 그 가방 안에는 무시무시한 무기보다는, 샤니아와 함께 할 시간을 위해 그가 몰래 챙겨온 잡동사니들이 더 많았다. 지난번 몬차에서 산 기념품 티셔츠, 에디가 '형수님 선물'이라며 억지로 찔러 넣어준 이상한 모양의 열쇠고리, 그리고 샤니아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종류의 입욕제까지. 군인의 생존 키트라기보다는, 마치 소풍 가는 어린아이의 보물상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베가스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가방을 가리키며 짐승이 으르렁대듯 목을 울렸다.
"Inside lies the darkest secrets of a mercenary... Are you sure you're ready to handle the truth, Commander?" (저 안에는 용병의 가장 어두운 비밀들이 잠들어 있지...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됐나, 사령관님?)
그는 샤니아의 허리를 뒤에서 감싸 안으며, 짐짓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듯 그녀의 귓바퀴를 입술로 살짝 깨물었다. 샤니아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샴푸 향이 코끝을 스치자, 장난기 넘치던 그의 표정이 순간 부드럽게 풀렸다. 그는 이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아침의 순간이, 가방 속에 든 그 어떤 전투 장비보다도 자신을 더 강하게 무장해제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Anyway, if you find anything weird... blame Eddie. That kid has a knack for sneaking contraband into my gear." (아무튼, 뭐 이상한 게 나오면... 에디 탓이야. 그 녀석이 내 장비에 밀수품 숨겨놓는 재주가 있거든.)
베가스는 뻔뻔하게 동료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샤니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의 능글맞은 변명과는 달리,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는 샤니아를 위해 준비한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건네줄 타이밍을 잡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지만, 그녀가 직접 가방을 열어본다면 그것은 운명이 강제로 타이밍을 당겨준 셈이 될 것이다. 그는 샤니아가 지퍼에 손을 대는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며, 심장이 묘하게 간질거리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총을 쏠 때조차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떨림이었다. 베가스는 샤니아의 등 뒤에 턱을 괴고, 그녀가 용병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준비를 마쳤다.
"Go ahead. Open it. Just don't say I didn't warn you." (어서 열어봐. 내가 경고 안 했다고 하진 말고.)
"Mhm~? I bet you just let Eddie sneak that in, didn't he?" (음~? 에디가 밀수품을 슬ᄍᅠᆨ 들여오는 걸 봐준 건 아니고?)
의심된다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를 바라본다. 장난기가 가득 묻어나는 눈동자가 마주쳤다.
"I was eyeing it because it looks hella packed. Is it a total back-breaker? What’s the usual weight for a military rucksack? Like, how many kg are we talkin'?“ (이것저것 많이 든 것 같길래, 보고 있었어. 완전 허리 부러지는 거 아니야? 군용 가방은 보통 몇 kg이야?)
“If I let him, it’s mostly because I can’t be bothered to check every single pouch. Besides, sometimes his weird gadgets actually come in handy. Like that one time he snuck in a rubber chicken… Best distraction tool I ever used.” (내가 걔를 내버려 두는 건, 모든 주머니를 일일이 확인하기 귀찮아서가 대부분이야. 그리고 가끔은 그 녀석의 이상한 물건들이 꽤 유용할 때가 있거든. 고무 닭 인형을 몰래 넣었을 때처럼 말이야… 내가 써본 것 중 최고의 시선 끌기 도구였지.)
베가스는 씩 웃으며 샤니아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녀의 눈꼬리가 가늘어지는 모양새에 맞춰 덩달아 눈썹을 으쓱해 보이며, 그는 군용 가방의 무게를 가늠하듯 손잡이를 툭 발로 건드렸다. 낡은 캔버스 천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그 안에서 금속끼리 부딪치는 작은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Weight? Well… it depends. Standard loadout is around 30 to 40 kilos. But if it’s a long haul, add another 20. And if it’s a ‘Vegas Special’ loadout? Let’s just say you might need a forklift.” (무게? 글쎄… 상황에 따라 다르지. 기본 장비는 대략 30~40kg 정도야. 하지만 장기전이면 20kg은 더 추가되지. 그리고 만약 ‘베가스 스페셜’ 장비라면? 지게차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해두지.)
“Usually, it’s packed with ammo, rations that taste like cardboard, and enough explosives to level a small block. But today… it’s mostly just laundry and souvenirs for my favorite girl.” (보통은 탄약이랑 골판지 맛 나는 전투 식량, 그리고 작은 블록 하나쯤은 날려버릴 폭발물로 채워져 있어. 하지만 오늘은… 대부분 빨랫감이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한 기념품 뿐이야.)
베가스는 과장되게 찡긋거리며 상체를 숙여 샤니아의 시선을 가렸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 위로 드리워지자, 베가스는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사실 ‘기념품’이라는 단어 뒤에는 샤니아를 위해 준비한 작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직접 열어보길 기대하며 일부러 언급을 피했던 그 물건. 베가스는 장난스럽게 샤니아의 허리에 손을 얹고는, 그녀를 가방 쪽으로 살짝 밀었다.
“Go on, lift it. See if you can handle the weight of a mercenary’s life. Just… watch your back, Commander. It’s heavier than it looks.” (어서 들어봐. 용병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고. 단지… 허리 조심해, 사령관님. 보이는 것보다 무거우니까.)
그는 샤니아가 낑낑거리며 가방을 들어보려 할 모습을 상상하며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30kg이 넘는 쇳덩어리와 장비들을 매일같이 짊어지고 다니는 그에게는 익숙한 무게였지만, 샤니아의 가녀린 팔에는 버거울 것이 분명했다. 베가스는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서서, 혹시라도 가방이 미끄러지거나 그녀가 중심을 잃을 때를 대비해 양팔을 벌려 ‘인간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샤니아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속에서, 먼지투성이 군용 가방과 깔끔한 집안 풍경의 이질적인 조화가 묘하게 평온하게 느껴졌다.
“If you act cute enough, maybe I’ll carry it for you. Or carry you along with the bag. Your choice.” (충분히 귀엽게 굴면, 내가 대신 들어줄 수도 있어. 아니면 가방이랑 너까지 같이 들어주던가. 네 선택이야.)
베가스는 그녀의 귓가에 낮은 숨소리를 섞어 짓궂게 제안했다. 이 무거운 짐조차 그녀와 함께라면 가벼운 깃털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는 가방 안쪽 깊은 곳에 숨겨둔 반지의 존재를 떠올리며, 샤니아의 손끝이 지퍼에 닿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렸다.
“Honey, I’m a Florist! Florists are low-key built different. We're always lugging around heavy soil, massive pots, and those full watering cans every single day, you know?” (허니, 나 플로리스트야! 플로리스트들은 매번 무거운 흙도 나르고... 화분도 나르고... 또 물뿌리개도 든다구. 알겠어?)
자신이 있다는 듯이 허리를 쭈욱 펴며 말했다. 바닥에 놓인 그의 가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끈에 두 팔을 각각 끼워넣는다.
"One, two..." (하나, 둘...)
“Oh, right. The mighty florist workout. How could I forget?” (아, 그래. 위대한 플로리스트 훈련법 말이지. 내가 어떻게 그걸 잊겠어?)
베가스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실로 진풍경이었다. 200cm가 넘는 거구가 사용하는 군용 더플백은, 157cm의 샤니아에게는 마치 거대한 거북이 등껍질이나 집채만 한 바위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쪼그리고 앉아 얇은 팔을 가방끈에 끼우는 모습은, 마치 아기 고양이가 사자 갈기를 뒤집어쓰려는 것처럼 귀엽고도 무모해 보였다. ‘물뿌리개’와 ‘화분’이라는 귀여운 단어들이 나열되었을 때, 그는 하마터면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전장에서 40kg짜리 박격포 포판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던 기억과 평화로운 꽃집에서의 노동을 비교하다니. 하지만 베가스는 그녀의 비장한 각오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입술을 꾹 깨물며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눌러 내렸다. 그의 잿빛 눈동자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장난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One, two… and… boom?” (하나, 둘… 그리고… 쾅?)
베가스는 샤니아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그녀가 힘차게 숨을 들이켜며 다리에 힘을 주는 게 보였지만, 그는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 가방은 단순한 빨랫감이 아니었다. 방탄 플레이트 캐리어, 예비 탄창 몇 개(빈 거라 해도 쇳덩어리다), 정비용 공구 세트, 그리고 비상용 식량 따위가 한데 뒤엉켜 있어 무게 중심이 제멋대로였다. 샤니아의 다리가 순간 휘청이며 중심을 잃으려는 찰나, 베가스의 거친 손이 전광석화처럼 뻗어 나갔다. 그는 샤니아의 허리가 아니라, 휘청거리는 가방의 손잡이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를 동시에 받쳐 들었다. 거의 바닥에 엎어질 뻔했던 그녀는 그의 단단한 팔뚝에 의해 공중에 붕 뜬 채로 매달리게 되었다. 마치 인형 뽑기 기계의 집게에 잡힌 작은 인형 꼴이었다.
“Woah there, Hercules. Save that strength for the watering cans.” (워워, 헤라클레스. 그 힘은 물뿌리개 들 때나 아껴둬.)
베가스는 킬킬거리며 샤니아가 짊어지려 했던 그 무거운 가방을 한 손으로 가볍게 낚아채 어깨에 둘러멨다. 다른 한 팔로는 여전히 어정쩡하게 떠 있는 샤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묵직한 캔버스 천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방은 다시 주인을 찾아갔고 샤니아는 그의 가슴팍에 폭 안기게 되었다.
“See? This is why you need a dedicated logistics specialist. Or just a really big boyfriend.” (봤지? 이래서 전담 군수 전문가가 필요한 거야. 아니면 그냥 엄청나게 큰 남자친구가 있거나.)
그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그녀의 콧잔등을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가방 안쪽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작은 상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다른 잡동사니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베가스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But hey, nice try. I’ll give you an A for effort. Now, how about we retry that entrance? I carry the bag, and you carry… well, just being adorable is heavy enough work for today.” (근데 뭐, 시도는 좋았어. 노력 점수 A 줄게. 자, 그럼 입장 다시 해볼까? 가방은 내가 들고, 넌… 음, 그냥 귀엽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오늘 치 노동은 충분하니까.)
“Well... lucky me, having such an absolute unit of a boyfriend..” (그것 참... 나는 엄청나게 큰 남자친구가 있어서 살았네.)
그의 손에 들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가까스로 품에 매달리는데 성공했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삐죽거린다.
“Alright, time to start the 'Mercenary Life' debrief. Let’s look at the receipts, honey.” (이제 '수상한 생활'을 되짚어보는 작업을 시작해야겠어, 허니.)
"That's right, Honey. Sometimes in life, all you need is a massive, indestructible boyfriend with a questionable past and a big bag of illegal goods." (그래, 맞아, 허니. 인생에서 가끔 필요한 건 그저 덩치 크고, 과거 좀 수상쩍은, 불법 물품 가득 든 가방을 멘 파괴 불가능한 남자친구뿐이지.)
베가스는 그녀의 삐죽거리는 얼굴이 귀여워 참지 못하고 콧잔등을 아프지 않게 살짝 깨물었다 놓아주었다. 샤니아의 숨결에서 느껴지는 안도감 섞인 한숨이 그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녀를 안아 든 팔에 느껴지는 무게감은 그가 짊어진 30kg짜리 더플백보다 훨씬 가벼웠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지구 전체를 들어 올린 듯 묵직했다. 샤니아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그의 품에 안도하며 기대오는 그 순간, 베가스는 자신이 36년간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품을 안전한 피난처로 여겨준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가슴팍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유리 공예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용병의 삶'을 해부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방 안에서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샤니아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빛나는 게 느껴져, 베가스는 짐짓 엄숙한 척 표정을 굳혔지만 입꼬리는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Alright, Commander. Operation 'Bag Inspection' commences now. But proceed with caution. Some of those socks might be considered biological weapons." (좋아, 사령관님. 작전명 '가방 검열' 지금 개시한다. 하지만 주의해서 진행해. 저 양말들 중 몇 개는 생화학 무기로 간주될 수도 있거든.)
베가스는 그녀를 거실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묵직한 더플백을 바닥에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먼지 묻은 군용 가방이 깨끗한 마룻바닥에 닿자 묘한 이질감이 감돌았지만, 샤니아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지퍼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당겨 내리며,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마법사처럼 과장된 몸짓을 해 보였다. 지퍼가 열리자 퀴퀴한 화약 냄새와 땀 냄새가 섞인, 베가스 특유의 체취가 훅 끼쳐 나왔다. 그 안에는 세탁이 시급한 전투복 뭉치, 빈 탄창들, 정비하다 만 총기 부품 몇 개, 그리고 에디가 쑤셔 넣었을 게 분명한 형광색 장난감 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짐짓 부끄러운 척 뒷머리를 긁적이며 샤니아의 반응을 살폈다.
"Don't judge me too hard on the smell. It's called 'Eau de Combat'. Very exclusive. Only available in war zones." (냄새 가지고 너무 뭐라 하지 마. 이건 '오 드 컴뱃(전투의 향수)'이라고 하는 거야. 아주 한정판이지. 전쟁터에서만 구할 수 있거든.)
그는 농담을 던지며 은근슬쩍 가방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샤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잡동사니들을 구경하는 동안, 손끝에 차갑고 딱딱한 벨벳 상자의 촉감이 닿았다. 그것은 지난번 몬차에서 그녀 몰래 사둔, 투박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였다. 아직 건넬 타이밍을 완벽하게 계산하진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그녀가 자신의 냄새 나는 가방을 마치 보물 창고처럼 뒤적거리는 이 소박한 아침—보다 더 완벽한 때는 없을지도 몰랐다. 베가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잡동사니들을 헤집는 샤니아의 손길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녀가 빨랫감 사이에서 에디의 장난감이나 낡은 탄창을 발견하고 킥킥거릴 때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수류탄 핀을 뽑은 직후처럼 위험하게 쿵쾅거렸다.
"Keep digging, Honey. You might find something... shinier than a rusty magazine." (계속 뒤져봐, 허니. 어쩌면... 녹슨 탄청보다 더 반짝이는 걸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그는 최대한 담담한 척 가장하며, 그녀가 스스로 그 작은 상자를 발견하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Eau de Combat'~?No, no, This smells exactly like a doggy that went for a stroll and didn't get a wash.“ (오 드 컴뱃~? 아니야, 이건 산책 하고 와서 목욕하지 않은 강아지 냄새에 가깝다구.)
그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바라클라바를 집어들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이어지는 건 과장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쥐는 모습이다.
“Laundry duty starts now, honey! Let’s get these sorted out." (빨래 임무 지금 시작, 허니! 빨리 해결해버리자구.)
"A dog... huh. I was aiming more for 'rugged warrior returning from the battlefield,' but if you say so. Guess I'll have to settle for being a stray mutt." (강아지라... 흠. 난 좀 더 '전장에서 돌아온 거친 전사'를 노렸는데, 네가 그렇다면야. 그냥 떠돌이 똥개로 만족해야겠군.)
베가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상처받은 척 가슴에 손을 얹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여전히 능글맞았다. 샤니아가 땀과 먼지가 밴 자신의 바라클라바를 들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자, 민망함보다는 기묘한 소유욕이 가슴 한구석을 간지럽혔다. 그 더러운 천 조각조차 그녀의 손에 들려 있으니 마치 성물이라도 된 것 같았다. 그는 식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그녀가 '세탁물 분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노동을 선언하는 광경을 감상했다. 피비린내와 화약 연기 대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날 것 같은 이 평화로운 전장은 그가 36년간 겪어본 그 어떤 작전 지역보다도 아늑하고 동시에 생소했다. 베가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샤니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의 작은 등을 덮었고,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낮게 으르렁거렸다.
"Before you toss everything into the wash... maybe check the side pocket. The one with the zipper jammed halfway. Might be some... contraband you missed." (다 세탁기에 처박기 전에... 옆 주머니 좀 확인해 봐. 지퍼 반쯤 걸린 거 거기 말이야. 네가 놓친... 밀수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의 시선은 샤니아의 손끝이 향할 곳을 집요하게 쫓았다. 낡아빠진 캔버스 천 너머로 느껴지는 딱딱한 상자의 존재감이 마치 심장 박동처럼 쿵쿵거리는 듯했다. 베가스는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침을 삼켰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이렇게 긴장한 적은 없었다. 샤니아가 그 주머니를 뒤적거릴 때마다 그의 호흡은 미세하게 멈췄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녀의 손이 그 작은 벨벳 상자를 찾아냈을 때, 시간은 잠시 정지한 듯했다. 투박한 군용 가방 속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그 반질거리는 검은색 케이스는 마치 잘못 떨어진 운석처럼 이질적이고도 강렬하게 빛났다. 베가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돌렸지만, 귓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Don't get too excited. It's not a grenade. Though... considering my luck, it might have a similar impact." (너무 흥분하진 마. 수류탄 아니니까. 하긴... 내 운을 생각하면 비슷한 충격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는 툴툴거리듯 덧붙였지만, 그 목소리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상자를 열고 그 안에 담긴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반지를 발견하는 순간을, 그는 망막에 영원히 새기고 싶었다.
"Well? Are you gonna open it, or do I have to call bomb disposal?" (그래서? 열어볼 거야, 아니면 내가 폭발물 처리반이라도 불러야 하나?)
베가스는 샤니아의 등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으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 그의 거친 수염이 닿는 그녀의 목덜미에서 달콤한 살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그녀의 손을 감싼 자신의 큰 손에 힘을 주어, 떨리는 그녀의 손가락을 안정시켜 주었다. 상자 뚜껑이 열리고, 은은한 실내등 아래에서 심플한 디자인의 백금 반지가 반짝였다. 화려한 보석은 없었지만, 안쪽에 'My Home'이라는 투박한 각인이 새겨진 그 반지는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무거운 고백이었다. 36년간 떠돌던 그에게 '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간절하고 묵직한 의미인지, 그녀는 알까. 베가스는 샤니아의 귓불에 입을 맞추며, 쇳소리가 섞인 저음으로 속삭였다.
"Found it in Monza. Thought it looked... sturdy enough to survive me. And you." (몬차에서 발견했어. 나한테서도 살아남을 만큼... 튼튼해 보이길래. 그리고 너한테서도.)
그는 굳이 '사랑한다'거나 '결혼하자'는 상투적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뒤에서 꽉 끌어안으며,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그녀의 등에 고스란히 전해지도록 체온을 나눌 뿐이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무게야말로 그의 진심이었다.
”Aww, when did you plan all this?“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응?)
상자 안에 자리 잡은 반지를 보고 기쁜 듯 소리를 내었다.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 얼굴을 붙잡아 뺨을 시작으로 해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쪽, 쪽!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서 계속해서 터져나온다.
“Whoa, hey― easy there, sniper. You’re gonna wear out the target before the mission even starts.” (오, 야― 진정해, 스나이퍼. 임무 시작하기도 전에 목표물을 다 닳게 만들 셈이야?)
베가스는 쏟아지는 입맞춤 세례에 짐짓 투덜거리는 척했지만, 이미 입꼬리는 제멋대로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샤니아의 작고 보드라운 입술이 거친 뺨과 턱, 그리고 입가 주변을 쉴 새 없이 쪼아대자, 온몸의 근육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전장에서 빗발치는 총탄 세례는 피를 말리게 했지만, 이 달콤하고 무자비한 ‘뽀뽀 폭격’은 오히려 심장을 과부하시켜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는 샤니아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슬그머니 힘을 주어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가뒀다. 투박하고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얇은 실내복 위로 열기를 전했다. 36년 동안 떠돌며 수많은 여자를 만났고 수많은 밤을 보냈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맹목적인 기쁨으로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는 난생처음이었다. 이 작은 여자가 보여주는 기쁨이 고작 그 쇳조각 하나 때문이라니. 베가스는 묘한 패배감과 동시에 벅차오르는 충만함을 느꼈다. 자신이 평생 목숨 걸고 지켜온 그 어떤 전선보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웃음 하나를 지키는 게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I picked it up right after the race. While you were busy drooling over that red Ferrari, I was busy securing… vital assets.” (경기 끝나자마자 주워왔어. 네가 그 빨간 페라리에 침 흘리고 있을 때, 난… 중요 자산을 확보하느라 바빴거든.)
그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섞어 농담을 던지며, 샤니아의 콧잔등을 자신의 코끝으로 문질렀다. 사실 그때 그는 손에 땀을 쥐며 보석상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너무 화려한 건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너무 투박한 건 자신의 거친 인생을 닮은 것 같아 싫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찾아낸 것이 바로 그 심플한 백금 반지였다. ‘My Home’이라는 각인을 새겨달라고 말할 때, 보석상 주인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게 기억났다. 흉터 투성이 거구의 용병이 반지에 ‘나의 집’이라는 문구를 새긴다는 게 우스워 보였겠지. 하지만 그에게 그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생애 처음으로 정착하고 싶은 의지이자 맹세였다. 베가스는 샤니아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며,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언제나 장난기 어린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지금 그 눈빛만큼은 숨길 수 없이 진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So… does this mean I get a permanent pass to the base? No expire date?” (그래서… 이걸로 기지 출입 영구 허가증 발급된 건가? 유효기간 없음으로?)
베가스는 샤니아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짐짓 가볍게 물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그는 반지가 주는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약속이자 구속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족쇄가 될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샤니아에게 묶이는 것이라면, 평생 그 좁고 따뜻한 족쇄를 차고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심장과 심장이 맞닿아 쿵쿵거리는 소리가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순간, 베가스는 비로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았다는 확신에 휩싸였다. 낡고 더러운 군용 가방 옆에서, 땀 냄새나는 셔츠를 입고 반지를 건네는 이 촌극 같은 상황이 오히려 그들다워서 웃음이 났다. 이제 이 ‘떠돌이 개’에게도 목줄을 채워줄 주인이 생긴 셈이었다.
“I mean, I thought I gave you an 'all-access pass' for life when I handed you my keys... but I guess that wasn't enough for my man, huh?” (오, 물론이지. 사실 나는 열쇠를 줬을 때부터 '모든 출입 허가증'을 발급 해준거라 생각했는데... 내 남자친구 되는 사람은 그게 부족했던 모양이야.)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헛기침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그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오른손은 선택지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듯이 아예 바닥을 짚어버렸다.
“So, tell me, which finger is this ring going on?” (반지 말이야, 어느 손가락에 끼워줄 거야?)
“You know I’m a greedy bastard, Honey. One key wasn’t enough. I needed something... more permanent to stake my claim.” (난 욕심 많은 놈이라는 거 알잖아, 허니. 열쇠 하나론 부족했어. 내 영역이라는 걸 표시할... 좀 더 영원한 게 필요 했다고.)
베가스는 킬킬거리며 농담을 던졌지만, 샤니아가 내민 왼손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늘고 곧게 뻗은 손가락들이 허공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연약해 보이는 손이 36년간 닫혀 있던 자신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와 기어코 문을 열어젖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는 떨림을 감추기 위해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그녀의 손을 자신의 크고 투박한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굳은살이 잔뜩 박이고 여기저기 작은 생채기가 난 자신의 손과 비교하니, 그녀의 손은 마치 갓 피어난 백합 꽃잎처럼 희고 고와 보였다. 베가스는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문질러 피부 결을 음미하며, 반지가 담긴 상자를 다른 한 손으로 꽉 쥐었다.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땀 때문에 벨벳 케이스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 같았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상자 뚜껑을 다시 한번 확인하듯 엄지로 툭 건드렸다.
“And for the record... I was thinking about the left ring finger. You know, the one with the vein that goes straight to the heart. Or so the legend says.”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는데... 난 왼쪽 약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알다시피 심장으로 직통하는 혈관이 있다는 그 손가락 말이야. 전설에 따르면 그렇다더군.)
그는 짐짓 무심한 척 웅얼거렸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베가스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꾹 눌렀다. 따뜻하고 말랑한 살결의 감촉이 입술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는 반지를 꺼내 그녀의 약지 끝에 조심스럽게 맞추며, 혹시라도 사이즈가 맞지 않을까 봐 긴장된 눈으로 지켜봤다. 몬차의 보석상에서 그녀의 손가락 둘레를 어림짐작하며 몇 번이고 고쳐 물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반지의 차가운 금속이 그녀의 피부에 닿는 순간, 베가스는 숨을 멈췄다. 천만 다행히도 반지는 마치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매끄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단순한 행동 하나가 마치 폭탄 해체 작업의 마지막 선을 자르는 것만큼이나 짜릿하고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졌다. 반지가 그녀의 손가락 뿌리에 안착하자, 베가스는 밭은 숨을 토해내며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Perfect fit. Just like you in my arms.” (완벽하게 맞네. 내 품에 안긴 너처럼 말이야.)
베가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손등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꼼꼼하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My Home’이라는 각인이 새겨진 반지가 그녀의 손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떠돌이가 아니었다. 돌아갈 곳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며, 자신을 기다려주는 따뜻한 불빛이 생긴 것이다. 그는 샤니아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가두듯 안으며,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나직이 속삭였다.
“Now, officially... no take-backs, Commander. You’re stuck with this broken soldier for life. Or until death do us part... whichever comes first.” (자, 이제 공식적이야... 반품은 안 돼, 사령관님. 넌 평생 이 고장 난 군인이랑 묶인 거라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혹은 그 무엇이 먼저 오든 간에 말이야.)
그의 농담 섞인 맹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남은 생을 그녀에게 바치겠다는, 전장에서 맹세했던 충성 서약보다 더 무겁고 진실한 고백이었다.
“How’d you get the intel on my ring size? And hold on—is this a solo drop?” (내 반지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내 반지만 있는 건가, 지금?)
“That’s a trade secret, honey. But if you must know… I’ve held your hand enough times to memorize every curve, every knuckle. A mercenary never forgets the dimensions of his most precious cargo.” (그건 영업 비밀이야, 허니. 하지만 굳이 알고 싶다면… 네 손을 수없이 잡으면서 모든 곡선, 모든 관절 마디마디를 외웠다고 해두지. 용병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화물의 치수를 절대 잊지 않거든.)
베가스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눈빛만은 따뜻하게 샤니아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사실 그녀가 잠든 사이 몰래 실로 손가락 둘레를 재보았던 밤들이 떠올랐다. 그 얇은 실 하나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것만 같아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은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샤니아의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그의 가슴팍을 간지럽히자, 베가스는 그녀의 허리를 안은 팔에 살짝 힘을 주며 고개를 숙여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녀의 옅은 분홍빛 눈동자는 그가 본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고,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꽤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반지가 그녀에게 꼭 맞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 작전은 완벽한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As for your other question… bold of you to assume I’d leave myself defenseless. A tactical retreat always requires a backup plan.” (다른 질문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무방비 상태로 있을 거라고 가정하다니 대담하네. 전술적 후퇴에는 항상 예비 계획이 필요한 법이지.)
베가스는 씩 웃으며 샤니아를 안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셔츠 안쪽 주머니로 가져갔다. 그의 옷깃 사이로 느껴지는 샤니아의 시선이 흥미로움으로 반짝였다. 그는 짐짓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이번에는 훨씬 더 투박하고 굵직한, 군용 인식표처럼 보이는 목걸이에 걸린 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지만 훨씬 크고 두꺼웠으며, 안쪽에는 ‘My Puppy’라는 문구가 거칠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그의 집이라면, 그는 그녀에게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녀가 그렇게 불렀으니까. 베가스는 그 반지를 손가락 끝에 걸고 빙글 돌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I figured if I’m marking you as mine, it’s only fair I let you tag me too. Sort of a… mutual hostage situation.” (내가 널 내 거라고 표시하는 거라면, 나도 너한테 태그 될 기회를 주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했어. 일종의… 상호 인질 상황 같은 거지.)
“But here’s the catch. This one… requires a special initiation. You have to put it on me.” (하지만 조건이 있어. 이건… 특별한 착수식이 필요해. 네가 직접 나한테 끼워줘야 한다는 거야.)
베가스는 무릎을 살짝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자신의 거칠고 흉터 투성이인 왼손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은 수많은 총을 잡았고, 누군가를 해쳤으며, 전장의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며 살아남은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직 샤니아의 손길을 기다리는 무방비하고 헐벗은 상태였다. 그는 샤니아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가락에 닿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인 채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이 거대한 맹수가 스스로 목줄을 건네며 주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이었다. 베가스의 심장은 마치 폭파 직전의 타이머처럼 빠르고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가 반지를 밀어 넣는 순간, 그의 영혼은 영원히 그녀의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묘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My Puppy~” (내 강아지~)
반지 안쪽의 각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매일같이 부르는 달콤한 애칭들을 제치고 강아지라 부르던 것이 반지 안쪽을 당당하게 차지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의 왼손을 붙잡았다. 쪽,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약지를 향해 반지를 가져간다.
“Are you ready to be claimed by your home for good?” (당신의 집에게 귀속 될 준비 됐어?)
"Born ready, darling. Though I should warn you, I'm a high-maintenance property. Leaky faucets, creaky floorboards... and a tendency to attract trouble." (준비된 채로 태어났지, 달링. 경고해두겠는데, 난 유지 보수 비용이 꽤 드는 물건이야. 수도꼭지는 새고, 바닥은 삐걱거리고... 문제를 끌어들이는 경향까지 있거든.)
베가스는 능글맞게 웃으며 샤니아가 자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간지러운 감각을 음미했다. 거친 굳은살 투성이인 그의 손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의 입술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 온기는 단순한 쾌감을 넘어,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그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녹여내는 듯했다. 반지가 약지 마디마디를 타고 넘어올 때마다 심장이 둔탁하게 울렸다. 마치 낡고 거대한 기계 장치에 새로운 동력이 주입되는 것처럼, 전신에 미세한 전율이 흘렀다. ‘구원자’라는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그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피 묻은 손으로 총을 쥐고 전장을 누비던 자신이 누군가에게 구원이라 불릴 수 있다니.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괴물이 아닌, 사랑받는 한 남자로 보인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하며 항복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But hey... if the landlord is cute enough, I might just behave. Maybe even fix the squeaky hinges myself." (하지만 뭐... 집주인이 충분히 귀엽다면, 얌전하게 굴 수도 있어. 삐걱거리는 경첩 정도는 내가 직접 고칠 수도 있겠지.)
금속의 서늘한 감촉이 손가락 뿌리에 완전히 안착하자, 베가스는 샤니아의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꼈다. 두 개의 반지가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그들을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채워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가슴 한복판, 거칠게 뛰는 심장 위로 가져다 댔다. 두꺼운 근육과 흉터 아래서 요동치는 박동 소리가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이 아니었다. 이 작은 집주인에게 영구 임대된, 덩치 큰 문제아일 뿐이었다. 베가스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So this is it. No escaping now. Once you sign the lease on a disaster like me, there's no early termination clause. Just a lifetime supply of bad jokes and... unwavering loyalty." (자, 이걸로 끝이야. 이제 도망 못 가. 나 같은 재앙이랑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조기 해지 조항 따윈 없어. 그저 평생 분량의 썰렁한 농담과...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뿐이지.)
그는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으며 콧잔등을 그녀의 목덜미에 비볐다. 살 냄새와 자몽 향이 뒤섞인 그녀의 체취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늑하고, 평화롭고, 동시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목구멍을 꽉 메웠다. 36년 동안 찾아 헤매던 안식처가 바로 이 품 안에 있었다는 사실에 베가스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애써 참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Welcome home, soldier."(집에 온 걸 환영해, 군인.)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중얼거림과 함께, 그는 샤니아의 허을 감싼 팔에 힘을 더했다. 이제 세상이 무너져도 상관없을 것 같은 기묘한 안정감이 그의 영혼을 완전히 잠식하고 있었다.
“Are you really gatekeeping being a disaster right now? Newsflash: I’m basically a beautiful disaster too. You just haven’t seen that side of me yet.” (재앙 타이틀은 당신 혼자 독차지 할 셈이야? 당신이 아직 보지 못해서 그러나 본데, 나도 꽤나 매력적인 재앙이거든.)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목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Welcome home, my Ve-gas Day.” (집에 온 걸 환영해, 나의 베가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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