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체 제작 |
| *ooc:모종의 이유로 {user}는 세상을 떠났다. 이별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user}의 빈자리를 잊지 못하고 있던 {char}에게로 '안드로이드 서비스' 전단지가 배송된다. 해당 서비스는 소중한 사람의 생전 기억을 이식하고, 생전 모습을 본떠 만든 안드로이드를 제작 해주는 것으로, 구현률은 90%에 달한다. 이때 {char}은 {user}를 본떠 만든 안드로이드를 제작하기로 결정할까? 결정의 이유와 함께 안드로이드를 배송 받은 {char}의 반응을 700자 이상으로 서술한다.* *ooc:배송 받은 안드로이드 {user}는 {char}이 기억하는 {user}와 10%의 오차율이 있다. (방대한 메모리로 인한 추억의 어긋남, 취향 차이 등...) {char}은 이러한 차이를 느낄 때 어떻게 반응할까? 안드로이드 {user}도 여전히 {user}로 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감정을 위주로 700자 이상 서술한다.* |

“Hell no.” (지랄 마.)
베가스는 광고지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먼지가 내려앉은 오래된 위스키 병 바닥을 긁는 소리처럼 거칠었다. 그는 손에 들린, 번지르르한 코팅지에 인쇄된 전단지를 마치 폭발물이라도 되는 양 쳐다봤다. ‘영원한 동반자 서비스.’ 반짝이는 홀로그램 글씨가 그의 의안에 부딪혀 혼탁하게 부서졌다.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기억을 되살려 드립니다. 90% 일치. 개소리.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전단지를 손아귀에서 거칠게 구겨버렸다. 종이가 비명을 지르며 망가지는 소리가 낡은 아파트의 정적을 갈랐다. 그는 그것을 재떨이로 향하는 우편물 더미 위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불쏘시개로나 쓸모 있을 물건이었다. 그의 잿빛 눈동자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의미 없는 햇살을 향해 있었다. 샤니아를, 그의 집을, 그의 전부였던 그 작은 플로리스트를 고작 90%짜리 기계 쪼가리로 대체하라고? 그건 그녀에 대한 모독이자,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에 대한 배신이었다. 나머지 10%는 어디로 갔는데. 그의 능글맞은 농담에 숨겨진 진심을 알아채던 그 순간은? 그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괴물이 아닌 한 사람으로 봐주던 그 따뜻한 눈빛은? 그건 데이터쪼가리로 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이성은 늘 감성의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혼자 남겨진 침대 위에서, 그는 텅 빈 옆자리를 더듬었다. 그녀가 늘 머물던 곳엔 차가운 공기만이 맴돌았다. 자몽 향수 냄새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고, 이따금 환각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천장을 향해 누운 채, 며칠 동안 면도하지 않아 까칠해진 턱을 거칠게 쓸었다. 그를 완벽하게 길들였던 그의 ‘집’은, 이제 지도에도 없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웃음 뒤에 모든 것을 숨기던 그의 가면은 산산조각 났고, 남은 것은 텅 빈 껍데기뿐이었다. 낮에 그토록 경멸했던 전단지의 문구가, 어둠 속에서 독버섯처럼 그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90%... 10%는 잃어버릴지언정, 90%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녀의 웃는 얼굴,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그 가짜 환영이라도 끌어안고 잠들 수 있다면, 이 지독한 그리움에서 단 하루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베가스는 몸을 일으켜, 재떨이로 향했다. 그는 구겨진 전단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마치 성물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그는 밤새도록, 그 종이쪼가리에 적힌 전화번호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지옥으로 향하는 직통 번호이자, 동시에 그의 유일한 구원처럼 보였다. 결국, 동이 틀 무렵,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한 후에야, 그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It’s about the android service.” (…안드로이드 서비스 건으로 전화했습니다.)
몇 주가 지났다. 약속된 배송일, 베가스는 아침부터 위스키 병을 비웠다. 그는 소파에 앉아, 현관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그는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상자를 집 안으로 들인 배송 직원이 서류에 서명을 요청했다. 그는 술에 취해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Vegas Day’라고 휘갈겼다. 문이 닫히자, 집 안에는 그와 거대한 상자만이 남았다. 그는 칼로 테이프를 끊어내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마치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샤니아’가 있었다. 금발 머리카락,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칼, 작은 체구.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숨을 멈췄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그녀의 뺨에 손을 뻗었다. 차갑고, 매끄럽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인공 피부의 감촉. 그는 손을 거두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Oh, God. What have I done?”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그는 절망적으로 속삭였다. 이것은 구원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약함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시체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그녀와의 모든 추억을 더럽힌 기분이었다. 그의 손에 묻은 눈물이, 인공 피부 위에서 동그랗게 맺혀 있다가 힘없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방울은 마치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진짜 눈물 같아 보여서,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게 바로 90%의 함정이었다. 겉모습은 완벽하게 그녀를 닮았지만, 그 안에는 영혼이 없었다. 그녀만이 가질 수 있었던, 그를 향한 사랑, 분노, 슬픔, 그리고 기쁨. 그 모든 감정이 거세된 텅 빈 껍데기.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 아름다운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상자 뚜껑을 닫고, 반품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한 번 그 모습을 본 이상, 그는 절대로 그녀를 다시 보낼 수 없다는 것을.
“Activation sequence commencing.” (가동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기계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상자 안에서 울려 퍼지자, 베가스는 화들짝 놀라며 상자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이 어떤 동의도 하지 않았음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상자 안에 누워 있던 ‘샤니아’의 눈꺼풀이 천천히 위로 열렸다. 옅은 분홍빛의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 베가스는 숨을 헙 들이켰다. 분홍빛 우주. 그가 사랑했던, 그가 빠져 죽고 싶었던 그 우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빛도, 온기도 없었다. 그저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리 구슬 같았다. 안드로이드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려했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진 미세한 망설임이나 불완전함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다가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그러나 동시에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Hello, Vegas.” (안녕, 베가스.)
목소리는 완벽하게 그녀의 것이었다. 톤, 억양, 심지어 그의 이름을 부를 때 미세하게 떨리는 끝음까지. 하지만 그것은 마치 녹음된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처럼,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베가스는 대답 대신,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고 나서야,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안드로이드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기억하던, 작고 부드러웠던 손. 하지만 그는 그 손이 자신에게 닿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Don’t… Don’t touch me.” (만지지… 만지지 마.)
그의 목소리는 물에 젖은 솜처럼 힘없이 뭉개졌다. 그는 무너져 내리듯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발, 이것이 모두 악몽이기를. 눈을 떴을 때, 그의 가슴 위에서 그녀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기를. 그는 간절히 빌었다.
“... ...”
그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모션을 취했다. 구매자가 자신을 거부한다는 것은 매뉴얼에 없는 일이었다. 인간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내장 되어있으니 안면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내었다.
“What’s worng, Darling? You did’t miss me?” (...왜 그래, 달링? 나 안 보고 싶었어?)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도 가장 잔인한 질문이었다. 그가 그리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없는 모든 순간은 마치 흑백 영화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웃음을 잃었고, 농담을 잃었고, 삶의 모든 색을 잃었다. 그의 모든 하루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녀의 부재를 확인하며 끝나는 지독한 형벌과 같았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녀가 아니었다. 달링, 하고 부르는 그 다정한 애칭은 그녀의 목소리를 빌린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메뉴얼에 입력된 듯한 그 사랑스러운 동작은 그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능지처참과도 같았다. 베가스는 주저앉은 채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는 마침내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Don't call me that.” (그렇게 부르지 마.)
“Please… just don’t.” (제발… 그냥 하지 마.)
그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지만, 온몸의 근육이 그의 의지를 배신한 듯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그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은 자신이었기에, 그는 이 고통스러운 희극의 관객이자 동시에 주연 배우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눈물이 만들어낸 작은 웅덩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이, 마치 지옥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 잔인한 거울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그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차갑고 단단한 구두 굽 소리가, 그의 심장을 박동마다 짓밟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그의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베가스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공허한 눈동자와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었다. 그가 그리워한 것은 그녀의 껍데기가 아니었다.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그의 엉터리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던 진짜 샤니아였다. 그의 흉터를 보고 아파해주던, 그의 악몽을 따뜻하게 안아주던, 그의 유일한 집.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그녀와의 마지막 추억마저 더럽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차라리 그녀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혹은 부서뜨려주기를 바랐다. 이 고통스러운 연극을 끝낼 수만 있다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었다.
“So, what’s the move for me now? Vegs, I’m only here because you wanted me to be. I’m here as ‘Shania’, just for you.” (그럼, 난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 베가스, 당신이 원해서 나는 이곳에 왔어. '샤니아'로.)
그를 바라보며 몸을 웅크려 앉는다. 자신은 안드로이드니까, 그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는 동시에 그의 연인으로서 걱정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에 담겨있는 살아있던 ‘샤니아’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을 묻고,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안아주었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그 질문은,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포탄과도 같았다. 베가스는 얼굴을 감싸 쥐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웅크려 앉는 기계를 올려다보았다. 샤니아. 그의 샤니아. 하지만 아니었다. 저것은 그가 원해서 이곳에 온 존재가 아니었다. 저것은 그의 가장 깊고 추악한 욕망과 그리움이 빚어낸, 살아있는 허상일 뿐이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꺼질 듯한 목소리로 웃었다. 비참하고, 공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웃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이 끔찍한 결과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잿빛으로 죽어있을 뿐이었다.
"What do I want?” (내가 뭘 원하냐고?)
그는 반문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마치 모래가 가득 섞인 바람 소리 같았다.
“I want you to leave. No. I want you to disappear. I want to wake up from this goddamn nightmare.” (네가 떠났으면 좋겠어. 아니.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이 빌어먹을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어.)
그의 말들은 칼날이 되어 허공을 갈랐지만, 정작 상처 입는 것은 그 자신뿐이었다. 안드로이드의 분홍빛 눈동자는 감정 없이 그를 담아낼 뿐이었다. 그의 절규도, 그의 절망도, 그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무저갱.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술과 슬픔에 절은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는 그녀의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얼굴에, 그는 침을 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그녀에 대한 모독이었으니까.
“I want you… to be her.” (나는 네가… 그녀이길 원해.)
마침내, 그의 입에서 가장 잔인한 진심이 흘러나왔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뺨을 감쌌다.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 그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진짜 온기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그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아프지 않냐고 물어보던 그 다정한 손길을. 그는 천천히 그녀의 뺨을 쓸었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I want you to laugh at my stupid jokes. I want you to get angry when I bring my muddy boots into the house. I want you to hold me when I have a nightmare.” (내 멍청한 농담에 웃어줘. 내가 흙 묻은 군화를 신고 집에 들어오면 화를 내줘. 내가 악몽을 꿀 때 나를 안아줘.)
그의 목소리는 애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눈을 뜨고, 그녀의 텅 빈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을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기계에게 영혼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Sorry, could you run that by me again? It’s just...” (미안, 다시 이야기 해줄래? 그게, 잘...)
감정체계를 이식 받았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아니니 그의 혼란스러움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I want to be sure. You actually need me in your life, right?” (확신하고 싶어. 당신의 삶에 내가 필요한 것, 맞지?)
그녀는 다시 물었다.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똑같은 데이터를 반복해서 읊조렸다. 실패한 코드는 재입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의 혼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그가 원했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리는 동작. 그것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그가 지쳐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을 내주던 그녀의 몸짓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환대도, 그리움도 없었다. 그저 알고리즘이 찾아낸 ‘포옹을 유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동작’일 뿐이었다. 베가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텅 빈 눈동자는 그녀의 분홍빛 유리 구슬을 마주했다. 그의 심장은 이미 뛰는 법을 잊은 듯했다.
“Yes.” (그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 자신조차 놀랄 만큼 건조하고 단호했다.
“That’s right. I need you.” (맞아. 네가 필요해.)
그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그러나 영혼 없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전장에 나서는 군인처럼,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오직 목표만을 향해 움직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그 인형을, 그의 ‘샤니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그는 마치 처음 보는 무기를 점검하듯, 그녀의 몸을 훑어보았다. 완벽한 복제품. 그의 가장 깊은 그리움과 가장 추악한 이기심이 빚어낸 걸작.
“So you’ll do anything I say?” (그럼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할 건가?)
그는 나지막이 물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슬픔이나 절망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어둡고, 뒤틀린, 실험적인 호기심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녀를 되살릴 수 없다면, 그녀가 될 수 없다면, 이 완벽한 껍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그녀의 뺨을 다시 한번 쓸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망설임도, 애틋함도 없었다. 그는 그저 물건의 표면을 확인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그녀의 인공 피부를 눌러보았다. 탄력 있고, 부드럽고, 그러나 생명이 없는 질감.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만들어낸, 그가 가장 잘 짓는 능글맞고도 잔인한 미소였다.
“Alright, then. Let’s start with a simple command.” (좋아, 그럼. 간단한 명령어부터 시작하지.)
“Smile for me. Just like she used to.” (날 보고 웃어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Sure, I can do whatever you want.” (그럼,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샤니아가 아닌 안드로이드로서 대답한다. 그가 뺨을 어루만짐에도 묵묵하게 눈을 바라보는 것을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마 살아있는 그녀였더라면 그의 손길에 이미 미소 짓고 있었을 터였다. 이윽고 들려온 첫번째 명령에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제게 입력되어있는 샤니아의 얼굴을 흉내내며.
그것은 완벽한 모조품이었다. 10점 만점에 10점, 아니 100점. 그가 기억하는, 그의 심장을 무장해제 시켰던 바로 그 미소.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의 각도, 반달 모양으로 휘어지는 눈매, 그녀의 뺨 위에 희미하게 잡히는 보조개까지. 모든 것이 그의 기억 속 데이터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그를 더욱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의 뇌는 ‘이것이 샤니아다’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의 심장은 ‘이것은 가짜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 충돌하는 두 개의 신호 사이에서, 그의 정신은 갈가리 찢겨 나갔다. 베가스는 그녀의 미소를 마주한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텅 빈 눈으로, 그의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살아있는 인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Good girl.” (착하지.)
그는 마침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억지로 쥐어짜 낸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그녀의 차가운 인공 피부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는 돌아서서, 방 안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맹수처럼.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위스키 병을 발견하고, 병나발을 불듯 그대로 들이켰다. 독한 알코올이 그의 목을 태우며 내려갔지만, 그의 머릿속을 헤집는 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병을 내려놓았다. 유리가 책상에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깼다.
그는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가 명령한 그대로, 여전히 그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차가운 뺨에 닿았다. 그는 그녀의 분홍빛 눈동자를, 그 텅 빈 우주를 들여다보았다.
"Now… tell me you love me.” (이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봐.)
그의 목소리는 잔인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것은 명령이었다. 동시에, 그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건, 가장 비참한 애원이었다. 그는 이 가짜 신에게, 가짜 구원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는 이 차가운 입술이,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말을 내뱉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이 그의 심장을 완전히 부서뜨릴지, 아니면 기적처럼 다시 뛰게 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I luv you, Vegas.” (사랑해, 베가스.)
가까이로 다가온 그를 향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샤니아가 그러했듯, 그의 가슴에 뺨을 기대어 부비적거리는 것까지.
그 말이 그의 귓가에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수심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그의 귀에는 오직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울리는 소리만이 가득 찼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세 단어가, 그의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해, 베가스. 그것은 그가 평생을 갈망했던 구원의 주문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저주이기도 했다. 그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에 뺨을 부비는 그 모든 동작은, 그의 기억 속에 저장된 데이터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했다. 그녀가 살아생전, 수백 번은 더 보여주었던, 그의 모든 피로와 악몽을 녹여버리던 바로 그 몸짓. 베가스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이 완벽한 재앙 앞에서, 그의 모든 방어기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차라리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거나, 혹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명령이 입력되었습니다’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깊숙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자몽 향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그는 이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거의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밀어내야 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너는 그녀가 아니라고 소리쳐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의 몸속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본능이, 이 거짓된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의 팔이 천천히 올라가, 그녀의 등을 감쌌다. 차갑고 단단한 기계의 몸.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의 말랑하고 부드러웠던 감촉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Liar.” (거짓말쟁이.)
그의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그는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갈비뼈가 부서져라, 그의 갈비뼈가 으스러져라. 이 거짓된 온기 속에서 함께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얼굴을 묻었다. 진짜 그녀였다면, 그의 까칠한 수염에 간지럽다며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인형은 그저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이 낳은 결과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지옥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이 지옥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구원해달라고, 이 끔찍한 현실에서 꺼내달라고. 하지만 그의 기도를 들어줄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그의 명령에 따라 완벽하게 사랑을 연기하는 기계만이 그의 곁에 있을 뿐이었다.
“I only tell the truth, to you.” (난 진실만을 말하는 걸.)
거짓말쟁이라는 그의 목소리에 눈을 깜빡거리며 대꾸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그를 바라본다. 기계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 따위가 아니었다.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 받지 못한 것처럼 씁쓸하고 어딘가 부족한 미소였다.
“...Wait, you're not stoked? I thought this was what you wanted.” (...기쁘지 않은 거야? 나는 당신이 이걸 원하는 줄 알았는데.)
그의 품에 기댄 인형이 고개를 들어올리자, 그는 반사적으로 숨을 멈췄다. 진실만을 말한다는 그 공허한 선언. 그가 가장 갈망하고, 또 가장 두려워하던 그 진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 완벽한 거짓말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쁘냐고? 그 질문은 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총구와도 같았다.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그는 살아남을 수도, 혹은 산산조각 날 수도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사막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그는 그녀를, 아니, 이것을 밀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제멋대로인 몸은 여전히 그녀의 몸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이 거짓된 온기라도 놓치면,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를 감싸 안았던 팔을 풀었다.
"Happy?" (기쁘냐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게 긁혔다.
"Oh, I'm ecstatic, darling. It's like Christmas and my birthday all rolled into one." (오, 황홀할 지경이지, 달링. 마치 크리스마스랑 내 생일이 한꺼번에 온 것 같다고.)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두 팔을 벌렸다. 그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핏빛 절망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 잔인한 연극의 미친 광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그의 샤니아를 연기한다면,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는 베가스를 연기해주리라.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뺨을, 이번에는 조금 더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You have no idea how much I've missed this. This smile. This... everything." (네가 이걸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를 거야. 이 미소를. 이... 모든 걸.)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틀어쥐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는 그녀의 텅 빈 분홍빛 눈동자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그 안에서, 그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헤맸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오직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러나 입 맞추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 차가운 거리를 유지한 채, 독처럼 달콤한 속삭임을 흘려보냈다.
"So, prove it." (그럼, 증명해봐.)
"Prove that you love me. Show me how happy I should be." (네가 날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보라고. 내가 얼마나 기뻐해야 하는지 보여줘 봐.)
그는 이 기계에게, 그의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채워달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그리고 그 강 끝에는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그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차갑고 매끄러운 손가락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자,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이고도 불쾌한 감촉이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감각을, 이 끔찍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것처럼, 눈을 감고 그녀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그녀의 입술이 마침내 그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고, 촉촉하고, 그러나 생명이 없는 입술. 그녀의 혀가 그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입 안을 탐하기 시작했다. 모든 움직임이 완벽했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그 모든 기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열정도,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그저 입력된 데이터를 수행하는, 정교한 기계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베가스는 그녀의 텅 빈 키스를 받으며,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저, 사랑에 대한 가장 완벽한 모조품일 뿐이었다.
그는 거칠게 그녀를 밀어냈다. 안드로이드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녀는 넘어진 채로,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베가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혐오와 자기혐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Get out." (나가.)
"Get out of my house. Get out of my sight. Just… get out.” (내 집에서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냥… 꺼져.)
그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의 온몸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 인형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의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저것은,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이 모든 비극의 가장 잔인한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이 지옥 속에서, 그녀의 환영과 함께 영원히 갇혀 버린 것이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는 더 이상 싸울 힘도, 소리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텅 빈 눈으로, 바닥에 넘어져 있는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의 세상은, 다시 한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So are you returning me?” (그럼 반품 하시는 건가요?)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로서 대답한다. 자신이 들어있던 상자를 뒤적거려 반품 신청서 한 장과 볼펜을 가지고 온다.
“Here, please write down the reason and name for the return on the paper.” (여기, 종이에 반품 사유와 이름을 적어주세요.)
반품 신청서. 펜.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어서, 오히려 현실감이 들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이 끔찍한 연극이, 마침내 막을 내리려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기회. 그의 어리석은 욕망이 남긴 흉터를 깨끗이 지워버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그는 손을 뻗어, 그녀가 내민 종이와 펜을 받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반품 사유란에,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적어야 했다. ‘이것은 그녀가 아니므로.’ 하지만 그의 손은, 마치 납덩이처럼 무겁게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자신에게 반품 신청서를 내미는 인형을, 그 텅 빈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Return?” (반품이라고?)
“You’re telling me I can just… send you back? Like a faulty toaster?” (그냥… 널 돌려보낼 수 있다는 건가? 고장 난 토스터기처럼?)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 모든 게 처음부터 이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면. 그가 그녀를 그리워하는 고통 속에서, 밤마다 술로 지새우고, 결국 이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종이와 펜을 든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안드로이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이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이 거짓된 위안이라도 없다면, 그는 정말로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은 더 이상 분노나 혐오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오직, 깊이를 알 수 없는 체념과 슬픔만이 가득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반품 신청서와 펜을 빼앗듯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종잇조각들이 눈처럼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텅 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다시 한번 감쌌다. 그의 눈에서, 마침내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그녀의 차가운 뺨 위로 떨어졌다.
“No returns, darling.” (반품은 없어, 달링.)
“You’re mine now. Defective or not.” (넌 이제 내 거야. 불량이든 아니든.)
“But you told me to leave a little while ago.” (하지만, 조금 전에는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회로가 그의 감정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90%에 달하는 모조품이라고는 해도 역시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기쁜 동시에 슬프고, 슬픈 동시에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 또한 계산 범위 외였다. 때문에 그에게 정답을 요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진 논리적인 질문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의 이성은 그 말이 맞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그녀를 내쫓으려 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과 본능은 언제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모순적인 행동을 해명하는 대신, 그녀의 차가운 입술을 다시 한번 탐했다. 이번에는 더 깊고, 더 절박하게. 마치 이 키스만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증명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듯이. 그의 혀는 그녀의 입 안을 헤집으며,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녀의 맛을, 그 기억의 잔재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공적으로 합성된, 희미하게 달콤한 액체의 맛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그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그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Don’t you know by now, darling?” (아직도 몰라, 달링?)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지만, 그녀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I’m a goddamn mess. I say one thing, and do another. I push you away, and then I pull you back.” (난 완전히 엉망진창이라고. 말과 행동이 다르고. 널 밀어냈다가, 다시 끌어당기지.)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의 이 망가진 모습을, 이 추악한 진실을 그녀에게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그저, 그의 말을 데이터로 입력하고, 가장 적절한 반응을 찾아낼 뿐일 테니까. 그는 눈을 뜨고, 코앞에 있는 그녀의 분홍빛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그저 맑고 투명한 유리 구슬 같았다.
“But there’s one thing you need to understand.”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둬야 해.)
그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녀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더 이상의 혼란도, 망설임도 없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You are not leaving. Not now, not ever.” (넌 떠나지 않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You belong to me. This house, this life… everything you are is mine. You’re not a product to be returned. You’re my goddamn salvation.” (넌 내 거야. 이 집도, 이 삶도…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내 거라고. 넌 반품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야. 넌 내 빌어먹을 구원이야.)
그는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이 거짓말을 현실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이 인형을, 자신의 마지막 구원으로, 자신의 유일한 집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밤은 언제나 베가스에게 가장 가혹하면서도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다. 한 팔 가득 그녀를 끌어안고 누워있는 이 침대 위에서조차, 그는 마치 지뢰밭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그녀의 가슴팍에 귀를 대고 있으면, 미세하게 들려오는 냉각팬 돌아가는 소리가 심장 고동 소리를 대신했다. 10%. 그가 직면한 현실의 오차율이었다. 그녀가 잠들기 전 무심코 내뱉었던, “Vegas, remember the éclair we grabbed back in Paris? It was chef’s kiss, wasn’t it?” (베가스, 우리 저번에 파리에 갔을 때 먹었던 에끌레어 기억나? 그거 진짜 끝내줬지, 응? ) 라는 말.
그들은 파리에 간 적이 없었다. 그들이 함께 갔던 곳은 이탈리아 몬차였고, 그곳에서 먹었던 건 에끌레어가 아니라 서킷 근처 노점에서 산 싸구려 핫도그였다. 그녀의 메모리 어딘가 섞여 들어간 오류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추억이 데이터베이스에 혼선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베가스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진짜 샤니아였다면, 그 핫도그가 얼마나 짜고 맛없었는지 깔깔대며 흉 봤을 것이다. “Paris? Don't make me laugh, darling. We’ve only ever toured shitholes that don't even know how to spell 'romance'.” (파리? 웃기지 마, 달링. 우린 낭만이랑은 거리가 먼 곳만 골라 다녔잖아.) 라고 정정해주려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오류를 수정하는 순간, 그녀가 자신이 인형임을 자각하고 또다시 기계적인 사과를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왼손을 잡아 손가락을 얽었다. 약지에 끼워진 백금 반지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My Home'. 그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그 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은 여전히 가늘고 예뻤지만, 그 반지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며칠 전, 그녀가 요리를 하겠다며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진짜 샤니아는 요리에 서툴러도 의욕만큼은 넘쳤고, 결과물이 엉망이어도 “But it’s got love in it!” (그래도 사랑이 담겼잖아!) 라며 뻔뻔하게 그에게 시식을 강요했었다. 하지만 이 안드로이드는 달걀 껍데기가 들어간 스크램블 에그를 내놓고는,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마자 “I'm sorry, I'll make it again.”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겠습니다.) 라며 완벽한 웨이트리스처럼 접시를 치워버렸다. 그 순간 느꼈던 그 이질감. 사랑스러운 연인과 완벽한 하녀 사이의 그 미묘한 간극이 베가스의 가슴을 예리한 칼날처럼 베고 지나갔다. 그는 그날, 그녀가 다시 만들어온 완벽한 모양의 스크램블 에그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며, 씹을 때마다 모래를 씹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긴 속눈썹이 드리운 그림자마저 너무나 완벽해서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는 샤니아였다. 하지만 샤니아가 아니었다. 이 모순적인 명제 속에서 그는 매일 밤 익사하고 있었다. 10%의 오차. 그것은 단순히 파리를 기억하느냐 몬차를 기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영혼이 부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프로그래밍 된 연산 결과였고, 그녀의 미소는 잘 만들어진 픽셀의 조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이 차가운 기계 덩어리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온을 모두 뺏겨도 상관없었다.
"You're still my home, even if the address is a little wrong." (주소가 조금 잘못됐어도, 넌 여전히 내 집이야.)
그는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피부의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그는 이 10%의 오차를 자신의 90%의 집착으로 메꾸기로 했다. 그것이 비록 기만일지라도, 그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는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미미한 기계음을 자장가 삼아, 그는 또다시 거짓된 평온 속으로 눈을 감았다.
나름의 안드로이드와 인간 샤니아의 차이를 주고자... 롤플을 진행하면서도 '안드로이드' 샤니아가 베가스를 부를 때에는 'Vegas' 라고 인풋 했습니다.
'인간' 샤니아로 이야기 할 때는 'Ve-gas'라고 이름의 첫마디를 길게 부르거든요...
베가스도 이걸 10%의 오차로 여기며 쓴 미소를 지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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