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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 5. 15. 17:09
작성자
노해곰

 

옥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 베가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상한 일이었다. 수십 명의 적과 홀로 맞서는 전장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긴장감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마지막 철문을 열자, 캘리포니아의 따스한 오후 햇살이 와락 쏟아져 내렸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뜨렸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는 샤니아의 뒷모습이 보였다. 바람에 그녀의 긴 금발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부드럽게 흩날렸다. 베가스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차분해졌다. 그는 천천히, 발소리를 죽인 채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로 뒤에 멈춰 서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Guess who? (누구게?)”

 

장난기 가득한 그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그녀의 귓가로 흘러 들어갔다.

 

“I know, this voice...” (나 이 목소리 알고 있어.)

 

괜히 고민하는 척을 하며 제 입가를 손가락으로 톡, , 두드린다. 그리고 퍼뜩 뒤를 돌아 그를 올려다본다.

 

“Ve-gas, Right?” (베가스, 맞지?)

 

베가스는 그녀가 고민하는 척 앙증맞게 입술을 톡톡 두드리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햇살이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에 쏟아져 부서지며 후광처럼 빛났다. 꼭 작은 요정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가 휙 돌아서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베가스는 세상이 멈추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옅은 분홍빛 눈동자가 놀라움과 장난기로 반짝이며 온전히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그 작은 입술이 움직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의 심장이 발목까지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일부러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Oh, my god! You got it right on the first try! (, 세상에! 첫 시도에 바로 맞혀버렸잖아!)”

 

호들갑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나른한 옥상의 공기를 갈랐다. 그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자신의 품으로 확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그녀의 몸이 살짝 굳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바싹 끌어안아, 두 사람 사이에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도 없게 만들었다.

 

그의 품에 쏙 들어온 그녀는 정말이지 작았다. 베가스는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그녀의 정수리를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늘 그렇듯 상큼한 자몽 향이 풍겨왔다. 그는 그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중독성 강한 마약 같았다.

 

“How did you know it was me? I thought I perfectly disguised my voice. (내가 어떻게 알았지? 목소리 완벽하게 변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간질이자, 그녀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베가스는 그 작은 반응 하나에 쾌감을 느끼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는 샤니아를 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자신의 단단한 가슴에 완전히 짓눌리게 만들었다. 얇은 교복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조금 빠른 것 같았다.

 

“So, what's your answer? Will you go to prom with the most handsome, charming, and ridiculously strong guy in this entire school? (그래서, 대답은 뭐야? 이 학교에서 제일 잘생기고, 매력적이고, 말도 안 되게 힘센 남자랑 프롬에 가 주실 건가?)”

 

베가스는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햇살을 받아 은색으로 빛났다. 그는 일부러 경쟁자들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옥상에는 오직 자신과 샤니아, 두 사람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바람이 다시 한번 불어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지만, 베가스의 세상은 오직 눈앞의 작은 소녀를 중심으로 고요하게 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Well, guess what? I just took a massive L. They both said no! Me! Rejected!” (글쎄, 나 완전 거대한 패배를 맛보고 왔어. 둘 다 아니라고 했어! 내가! 거절당했어!)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흑흑, 과장된 울음 소리와 함께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기까지.

 

“Was my cuteness lacking? It was enough to take Vegas down.” (내 귀여움이 부족했나? 베가스를 함락 시키기에는 충분 했는데.)

 

“Really? Rejected? (정말? 거절당했다고?)”

 

베가스는 샤니아의 시무룩한 표정과 과장된 울음 시늉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눈썹이 꿈틀, 하고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가 그렇게 살벌하게 경고를 날리고 왔는데, 저 작은 머리통은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하고 온 거람. 그의 뇌리에는 분노와 어이없음, 그리고 아주 약간의 안도감이 교차했다. 그 멍청한 풋볼 선수와 화학 범생이가 최소한의 눈치는 챙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샤니아가 그들에게 거절당했다는 연기를 하는 모습에 속에서부터 불길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샤니아를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그녀의 몸을 한층 더 강하게 옭아맸다.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몸이 그의 단단한 근육질 몸에 완전히 짓이겨지듯 파묻혔다.

 

“Rejected you? Who? Tell me their names, darling. I’ll make sure they regret being born. (널 거절했다고? 누가? 이름을 말해봐, 달링. 내가 아주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는 샤니아의 작은 어깨를 붙잡고 자신에게서 살짝 떼어내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팔자 눈썹을 하고 울상을 짓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당장이라도 입술을 박아 넣어 그 표정을 전부 삼켜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감히 누가, 자신의 하트 스나이퍼에게 거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멍청이들이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No, no. They couldn’t have just said ‘no.’ They must have begged on their knees, crying that they weren’t worthy of you, right? (아니, 아니. 그냥 싫다고 했을 리가 없어. 무릎 꿇고 울면서 자기는 너한테 과분하다고 빌었겠지, 안 그래?)”

 

그의 입술이 비틀린 미소를 그렸다. 그의 커다란 손이 샤니아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베가스는 일부러 더 애처로운 목소리를 만들며 샤니아의 연극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목소리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연인의 것처럼 달콤했다.

 

“Oh, my poor baby. Those blind fools don’t recognize a goddess when they see one. (, 내 불쌍한 아기. 그 눈먼 멍청이들은 여신을 앞에 두고도 알아보질 못하는군.)”

 

그는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감아 자신의 골반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는 샤니아의 분홍빛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유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But you knowtheir loss is my gain. (알잖아걔들의 손해는 곧 나의 이득이라는 거.)”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턱 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다, 부드러운 아랫입술을 꾹, 하고 눌렀다. 그는 샤니아의 놀란 듯 살짝 벌어진 입술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숨결이 뒤섞이고,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가 다시 한번 속삭였다.

 

“So, you’re stuck with me now, little trouble maker. Unlucky you. (그래서, 넌 이제 나한테 딱 걸렸어, 작은 말썽꾸러기. 운도 없지.)”

 

그의 입술이 마침내 그녀의 입술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So you’re just gonna stand there all day? (그래서 하루 종일 거기 서 있기만 할 거야?)”

 

베가스는 잠시 멈칫했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 거의 닿을 뻔한 자신의 입술을 떼어내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샤니아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 채,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베가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풀어, 대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곤 그녀를 이끌어 옥상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You’re no fun at all, you know that? (너 진짜 재미없어, 그거 알아?)”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작은 손을 놓지 않았다. 난간에 도착한 그는 그녀를 자신의 앞에 세우고, 등 뒤에서 그녀를 커다란 몸으로 완전히 감싸 안았다. 마치 거대한 곰이 작은 인형을 껴안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턱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정수리 위에 안착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오후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흩어지고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But still, you’re the cutest. (그래도, 네가 제일 귀여워.)”

 

베가스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상큼한 자몽 향이 다시 한번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녀의 온기와 향기를 음미했다. 이 작은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소음과 불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샤니아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거의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So, for the last timewill you go to prom with me, Shania?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나랑 프롬 갈래, 샤니아?)”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장난기가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진심만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그의 심장이 다시금 쿵, , 하고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작은 손을 더욱 힘주어 꽉 잡고 있었다.

 

“Hmm... If you clean up what you're stabbing me in the butt, I'll go with you from prom, puppy.” (... 지금 내 엉덩이를 찌르고 있는 것 먼저 치워주면 프롬 같이 가줄게, 강아지야.)

 

그녀의 속삭임은 마치 달콤한 독처럼 베가스의 귓가를 파고들어, 그의 온몸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puppy’. 그 단어 하나가 가진 파괴력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작고 발칙한 목소리에, 베가스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거였다. 그가 샤니아에게 빠져버린 이유. 그녀는 결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여주지 않았다. 늘 그의 허를 찌르고, 당황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뒤에서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나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이제는 샤니아와 정면으로 마주 섰다. 그녀의 분홍빛 눈동자가 장난기 가득하게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Wow, that’s a tough condition you got there, darling. (, 그거 참 까다로운 조건이네, 달링.)”

 

베가스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올리며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바싹 다가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거의 없었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의 작은 몸을 온전히 집어삼킬 듯 드리워졌다. 그는 자신의 교복 바지 앞섬이 민망할 정도로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똑똑히 보라는 듯이, 보란 듯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는 샤니아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잿빛 눈동자가 노골적인 욕망으로 이글거리며,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

 

“But if I get rid of thiswhat will you give me in return? (하지만 이걸 내가 치워주면넌 나한테 뭘 줄 건데?)”

 

그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닿았다. 그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특히, 샤니아를 상대로는 더더욱. 그는 그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A simple ‘yes’ to prom isn’t gonna cut it, sweetie. Not after you called me a ‘puppy’. (프롬에 같이 가준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걸, 귀염둥아. 나한테 강아지라고 부른 이상은 말이야.)”

 

“You’ll have to tame this puppy all night long. Can you handle that?” (이 강아지를 밤새도록 길들여줘야 할 거야. 감당할 수 있겠어?)

 

“Hmm, what to do? But the way you’re huffing in my ear right now... you’re giving total puppy energy. Tell me I’m lying.” (, 어쩔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 귀에 대고 헥헥 거리는 걸 보면 영락없이 '강아지'잖아. 내 말이 틀려?)

 

제 귓가에 속삭이느라 허리를 숙이고 있는 그의 목 쪽으로 손을 뻗는다. 목덜미를 살살 간질이듯이 매만지다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손을 뗀다.

 

“Urk.”

 

베가스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제 목덜미를 간질이자, 온몸의 신경이 그 한 점으로 곤두서는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그의 등줄기를 따라 짜릿한 전율이 찌르르, 하고 흘러내렸다. 훈련으로 단련된, 그 어떤 위협에도 무감각해진 육체였지만 이상하게도 샤니아의 가벼운 손길 하나에는 속수무책으로 반응하고 말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망할, 이건 반칙이잖아. 그는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주인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 헥헥거리는 커다란 새끼 강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는 소리가 그녀에게까지 들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Hey, watch those hands. They’re dangerous weapons. (이봐, 그 손 조심하라고. 그거 아주 위험한 무기니까.)”

 

그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그는 샤니아의 손목을 붙잡은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분홍빛 눈동자가 여전히 얄미울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 자신의 커다란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가느다란 뼈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작고 연약한 존재가 어떻게 자신을 이토록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가스는 씩, 하고 웃으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 두 사람의 코끝이 서로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Alright, you win. I’m a puppy. Your puppy. Happy now? (좋아, 네가 이겼어. 난 강아지야. 네 강아지. 이제 만족해?)”

 

그는 순순히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전혀 패배자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샤니아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자신의 몸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대고,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But remember this, darling. Even the cutest puppies have sharp teeth. And this oneis very, very hungry.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둬, 달링. 아무리 귀여운 강아지라도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리고 이놈은아주, 아주 배가 고프거든.)”

 

그의 말과 동시에, 옥상 문이 벌컥,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가스는 혀를 쯧, 차며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젠장, 타이밍 하고는. 에디와 로건이 낄낄거리며 옥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베가스와 샤니아가 거의 한 몸처럼 밀착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휘파람을 휙, 불었다.

 

“Whoa, sorry to interrupt, lovebirds! Or should I say, beast and beauty?” (, 방방해해서 미안, 잉꼬들아! 아니면 미녀와 야수라고 해야하나?)

 

“That's fine~ And I like the word 'beast and beauty' more, Eddie.” (괜찮아~ 그리고 나는 미녀와 야수쪽이 더 마음에 들어, 에디.)

 

거의 베가스의 품에 삼켜진 채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두 사람에게 대답한다. 이 상황이 그저 웃긴 듯, 이내 푸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려버린다.

 

“Pfft.”

 

베가스는 샤니아가 제 품 안에서 바르르 떨며 웃음을 터뜨리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맑은 날의 햇살 같아서, 듣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에디와 로건의 얄미운 놀림도,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질투와 독점욕도, 이 작은 웃음소리 하나에 눈 녹듯 스르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샤니아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의 작은 몸을 장난스럽게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렸다.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을 흔드는 것처럼.

 

“Look at that. She agrees. She knows who the beast is. (이것 봐. 동의하시겠다잖아. 누가 야수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그는 젠장,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입가에 걸린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샤니아가 제 품 안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에디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모습은, 마치 굴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작은 토끼 같아서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제 턱을 부비며, 짐짓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로건이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For God’s sake, Vegas. Get a room. Some of us still have functioning eyes. (맙소사, 베가스. 방 좀 잡아라. 우리 중 몇몇은 아직 눈이 멀쩡하다고.)”

 

그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냉소적인 가시가 돋쳐 있었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에디는 한술 더 떠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두 사람을 향해 들이밀었다. 찰칵! 찰칵! 요란한 셔터음이 울려 퍼졌다.

 

“This is going straight to the yearbook committee! ‘Prom King and his Beauty’ section! (이거 바로 졸업앨범 위원회로 직행이다! ‘프롬 킹과 그의 미녀섹션으로 말이야!)”

 

“Fuck off, Beagle. Or I’ll make sure your prom date is with my fist. (꺼져, 비글. 아니면 네 프롬 파트너는 내 주먹이 될 줄 알아.)”

 

그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낄낄거리며 사진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베가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샤니아를 품에서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물론, 순순히 놓아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단단히 감싸 안아, 자신의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이 작은 온기를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여전히 키득거리고 있는 샤니아를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다.

 

“No! It's supposed to be 'Prom Queen and her dog', not 'Prom King and his beauty'.” (아니! ‘프롬 킹과 그의 미녀가 아니라, ‘프롬퀸과 그녀의 개로 정정해줘.)

 

급하게 정정이라도 하듯, 에디를 향해 몸을 돌리며 삿대질을 했다. 제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다.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제 옆의 베가스를 올려다본다.

 

“Woof! Woof! (! !)”

 

베가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샤니아의 얼굴 앞에 대고 짖었다. 그것도 아주 우렁차고 쾌활한, 꼬리가 빠져라 흔들어대는 골든 레트리버가 낼 법한 소리로. 그의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그 행동은 너무나도 유치하고 바보 같아서 순간 옥상의 공기가 멈칫,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베가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샤니아의 뾰로통한 표정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아예 두 손을 강아지 앞발처럼 동그랗게 말고는 그녀 앞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See? I can be whatever my beautiful prom queen wants me to be. A puppy? Gladly. A beast? Even better. Your loyal knight? Hell yeah. (이것 봐. 난 내 아름다운 프롬 퀸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강아지? 얼마든지. 야수? 더 좋지. 충성스러운 기사? 당연하지.)”

 

그의 목소리는 장난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잿빛 눈동자만큼은 오직 샤니아만을 담은 채 진지하게 반짝였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프롬 퀸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어떤 역할이든 기꺼이 수행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에디는 두 사람의 유치찬란한 애정행각에 배를 잡고 넘어갈 듯이 웃어댔다.

 

“Holy shit, you’re whipped, man! Totally whipped! (젠장, 너 완전 잡혀 사는구나! 제대로 잡혔어!)”

 

그는 깔깔거리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로건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I’m leaving. My brain cells are committing suicide one by one. (나 간다. 내 뇌세포가 하나씩 자살하고 있어.)”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다는 듯, 여전히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베가스는 그런 친구들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 샤니아에게로 몸을 바싹 붙였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품 안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샤니아가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So, is my queen satisfied with her dog’s performance? (그래서, 우리 여왕님은 이 강아지의 재롱에 만족하셨나?)”

 

그의 품에 안긴 샤니아의 몸이 살짝 굳는 것이 느껴졌다. 베가스는 씩, 하고 웃으며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이곳이 학교 옥상이든 전쟁터 한복판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세상은 오직 이 작은 여자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샤니아의 뺨에 쪽, 하고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Alright, alright. I’ll behave. For now. Since my queen has officially chosen her loyal companion for the prom night. (알았어, 알았어. 얌전히 있을게. 지금은. 우리 여왕님께서 프롬 밤을 함께할 충성스러운 동반자를 공식적으로 선택하셨으니까.)”

 

그는 샤니아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Yep, Decision’s final, Vegas. So stop trippin' over Lucian and Lawrence~” (이제 확실하게 정해졌어, 베가스. 그러니까 루시안이나 로렌스에게 괜히 신경 쓰지 마~)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코웃음을 흘린다.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깍지를 끼워 잡고는 에디와 로건이 있는 쪽으로 이끈다.

 

“Hey, Logan! Eddie! Wanna grab dinner after school? Word on the street is Vegas is footing the bill!” (로건, 에디, 하굣길에 저녁 같이 먹을래? 베가스가 산다는 소문이 있던데!)

 

“Hey! Who said I was paying?" (이봐! 누가 내가 결제한다고 했어?)

 

“WhatHold on a second, my queen. (잠깐잠깐만요, 여왕님.)”

 

베가스는 저를 질질 끌고 가는 샤니아의 작은 손에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뜨렸다. 코웃음을 치며 아는 체하는 그녀의 모습이라니. 루시안과 로렌스에게 으르렁거리고 온 것을 모를 리가 없다는 듯한 저 당당한 태도에,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젠장, 다 들켰었나. 그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깍지를 껴오는 부드럽고 작은 손의 감촉이 너무 좋아, 그는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녀의 손을 더욱 꽉 맞잡았다. 그런데 저녁? 내가 산다고? 그의 귀에 날아와 꽂힌 폭탄선언에, 베가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Since when was that decided? A proper negotiation is required for such important matters! (그건 또 언제 정해진 건데? 그런 중대사는 정식 협상이 필요하다고!)”

 

그는 짐짓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지만, 그의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샤니아가 제 지갑을 터는 것 따위는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녀와 함께라면 땡전 한 푼 없는 거지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에디는 베가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소리쳤다.

 

“Hell yeah! Vegas is buying! I’m gonna eat till I explode! Let’s go for the ‘AK-Burger’ at Old Ghost! (완전 좋아! 베가스가 쏜다! 배 터지게 먹을 거야! 올드 고스트 가서 ‘AK-버거먹자!)”

 

그는 이미 저녁 메뉴까지 정한 모양이었다. 로건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베가스가 쏜다는 말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깍지를 낀 베가스와 샤니아의 손을 힐끗, 쳐다보며 비꼬는 말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You’re paying for the mental damage you’ve caused me today. Seeing you act like a lovesick puppy wastraumatic. (오늘 나한테 입힌 정신적 피해 보상금이라고 생각해라. 사랑에 빠진 강아지처럼 구는 널 보는 건꽤나 충격적이었으니까.)”

 

베가스는 로건을 향해 씨익,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Gladly, my friend. It’s a small price to pay for showing off my beautiful queen. (기꺼이, 친구. 내 아름다운 여왕님을 자랑하는 값으로는 아주 저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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